전국체전 ‘육상 심판’ 해보니 2박3일 교육하면 3종 심판 자격… 종목에 따라 심판 구성도 세분화 모래판 상태 따라 기록 달라져… 1시간 넘게 모래 맞아가며 정리 심판하고 싶어 휴가내고 오기도
21일 부산 연제구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멀리뛰기 경기장에서 육상 심판들이 모래 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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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멀리뛰기 경기장. 도움닫기 주로를 빠르게 달려온 선수가 구름판을 박차고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착지 지점인 모래판에 철퍼덕 떨어졌다. 움푹 팬 자국을 지우느라 진땀을 흘렸다. 긴 알루미늄 막대기 끝에 넓은 철판이 붙은 T자형 고무래로 모래판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습기를 머금은 모래 입자가 밀가루처럼 고와 조금만 힘을 줘 밀거나 당기면 평평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자국이 더 깊게 남았다.
기자는 부산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 육상 심판을 맡았다. 19∼22일 나흘을 주경기장 본부석 맞은편 멀리·세단뛰기 경기장에서 보냈다.
육상 심판이라 하면 보통 트랙에서 출발을 알리는 총을 쏘는 ‘스타터’를 떠올리지만, 트랙·도약·로드레이스·투척처럼 종목이 다양한 만큼 심판 구성도 세분화돼 있다. 멀리뛰기 같은 수평 도약 종목만 놓고 봐도, 발구름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심판, 착지 지점을 특정해 스파이크를 꽂는 심판, 기록표 작성과 선수 호출 담당, 풍속 측정 요원 등 15명 안팎이 투입된다. 기자는 이 가운데 모래판을 정리하는 6명 중 한 명이었다. 현장에서는 속칭 ‘고무래’라 불리는 보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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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햇볕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됐다. 예선과 결선을 합쳐 선수당 6차례 점프 기회가 주어지는데, 15명 이상의 선수가 참가하면 경기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착지 순간 튀어 오른 모래가 얼굴을 때리고 입안까지 들어가도 털어낼 틈 없이 고무래를 잡아야 했다.
파란 천막 아래 심판석엔 경기 내내 긴장감이 흘렀으나, 심판들 표정에는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심판 상당수가 학생 때 육상 선수를 하다가 은퇴해 지도자로 활동 중이었다. 멀리뛰기 선수 출신으로 고교 체육교사로 30년 넘게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한 한 심판은 “3년 전부터 전국을 돌며 심판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고무래를 잡은 김한수 씨(51)는 부산본부세관 직원인데 심판으로 활약해 보려고 연차를 냈다. 그는 “너무 긴장해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전국체전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뛰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심판 주임을 맡았던 김상민 씨(48)는 “심판을 맡은 경기에서 한국신기록이 나오고, 공정하게 판정했기 때문이라는 격려를 들을 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심판이 되려면 교육을 거쳐야 한다. 기자는 올 6월 부산육상연맹이 개최한 심판강습회에 참석해 2박 3일 동안 트랙과 도약 등 육상 경기 규칙을 배웠다. 마지막 날 필기시험은 오픈북 형태로 치러졌음에도 풀기 어려운 문제가 많았다. 이렇게 3종 심판 자격을 얻은 뒤 현장 경력을 쌓게 되면 2종과 1종 심판으로 승급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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