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서 맹활약 임명옥 6년 연속 베스트7 올랐던 리베로 10년 뛴 도로공사서 트레이드 IBK 유니폼 입고 컵대회 우승… “코트에서 아직 보여줄게 많아”
男女 리베로 전설 ‘한솥밥’ IBK기업은행에서 새출발하는 베테랑 리베로 임명옥(왼쪽)이 경기 용인시 구단 훈련장에서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은 여오현 코치.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임명옥과 여 코치는 나란히 V리그 20주년 남녀부 베스트 리베로로 선정된 배구계 전설들이다. 용인=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임명옥
그런 마음을 눈치챈 김호철 IBK기업은행 감독(70)이 여수행 버스에 오르기 전에 임명옥을 따로 불러냈다. “누가 네게 범실하지 말라고 하더냐. 너도 사람인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부담 내려놓고 편하게 해라.” 짧지만 따뜻한 한마디였다. 김 감독의 격려 속에 임명옥은 정관장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 선발로 나서 승리에 힘을 보탤 수 있었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신감도 되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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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시즌을 마친 뒤 10년간 몸담았던 한국도로공사를 떠나게 됐다. 한국도로공사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아웃사이드 히터 강소휘(28)를 영입하면서 불어온 후폭풍을 맞은 것이다. 팀 연봉 규모를 줄이는 과정에서 임명옥은 대폭 삭감된 연봉으로 계약한 뒤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통해 IBK기업은행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됐다. 구단 첫 통합 우승(2017∼2018시즌)을 일궈낸 임명옥으로서는 씁쓸한 이별이었다.
공교롭게도 컵 대회 결승전에서 친정팀 한국도로공사를 상대한 임명옥은 리시브 효율 75%(16개 중 12개), 디그 성공률 90.48%(21회 중 19회)를 기록하며 수비의 중심을 든든하게 잡았다. IBK기업은행도 임명옥의 활약에 힘입어 2016년 이후 9년 만에 컵 대회 정상에 올랐다.
임명옥이 구단에 가져다 준 것은 우승컵만이 아니었다. 그는 몸 관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저녁 보강훈련에 참여하고 있는데 어느새 후배들이 하나둘 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임명옥이 생각하는 최고의 리베로는 ‘공을 터치하지 않아도 코트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다. IBK기업은행이 임명옥에게 기대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불혹을 앞둔 임명옥은 팀 내에서 ‘할머니’로 통한다. 임명옥은 “(황)민경이가 ‘언니 오고 나서 너무 좋다’고 하더라. 전보다 회복이 더딘 건 느껴지는데 코트 안에만 서면 전혀 나이를 모르겠다. 아직 보여줄 게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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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
임명옥은 여 코치에 대해 “재미있고 열정 넘치는 분이다. 리시브할 때 시선 같은 사소한 것까지 세세하게 가르쳐주신다”고 했다. 임명옥은 여 코치의 ‘45세 현역 프로젝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탄수화물과 지방을 줄인 식단으로 유명한 이 프로젝트는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하드 코스’로 알려져 있다. 밀가루를 거의 먹지 않는 등 평소 몸관리가 철저한 임명옥이지만 집에 돌아와 마시는 맥주 한 캔의 행복만큼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여지는 남겼다. 임명옥은 “지금은 솔직히 1년, 1년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데 이 나이까지 배구 할 줄 몰랐으니 (45세 현역 프로젝트도) 또 모르는 일 아닐까요?”라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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