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NOW] 디지털 피로도 높이는 알고리즘… 유행 속에서 미세한 변주 즐겨 취향 존중-맞춤 브랜드 늘어나 … 소비자가 탐색할 여백 남겨야
대량 생산의 균질한 맛보다 개인화된 경험을 바탕으로 취향 맞춤형 미식 소비를 즐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독일 리슬링 전문 와인바 ‘그룬트’에서는 다양한 카테고리의 리슬링 와인 4종을 취향에 맞춰 골라서 마실 수 있다(위쪽 사진). 동서식품이 11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에서 운영하는 ‘카누 캡슐 테일러 in 북촌’에서는 비교 시음 뒤 31가지 캡슐 중 마음에 드는 캡슐로 나만의 키트를 꾸릴 수 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동서식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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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일부 사용자를 대상으로 얼리 액세스 권한이 부여되었다. 새로운 기능을 정식 출시하기 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권한으로 필자의 계정도 그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3주 정도 경험 후 디지털 피로도가 지나치게 높아져서 취소했다. 가장 큰 변화는 인스타그램 첫 화면에 내가 팔로하지 않는 사람들의 릴스가 먼저 보인다는 것이다. 맛집이나 여행 등 필자가 관심 있는 분야나 한 번이라도 ‘좋아요’를 눌렀던 콘텐츠면 비슷한 숏폼 영상이 뜨는 건데 지나치게 난무하다.
알고리즘은 한때 삶을 더 편리하게 해주고, 맞춤화된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도구였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왜곡된 세계관을 강요하거나 디지털 피로도를 높게 만든다. 글로벌 리서치기관 민텔이 발표한 2026년 글로벌 소비자 예측 리포트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소비자는 알고리즘 덕분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더욱 내 취향에 맞는 개인화된 추천을 받을 수 있었지만, 2020년부터 2025년 사이에는 알고리즘이 일상에 확장되면서 오히려 긴장감이 조성돼 소비자들이 부담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숏폼 특성상 화면에 중독되며 무의미한 스크롤링이나 둠스크롤링(부정적 뉴스 탐색 습관)까지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거 먹어봐, 이거 마셔봐, 여기 가봐’ 등 엄청난 개수의 선택지에 압도되어 끝없는 갈망에 시달리게 된다는 부작용도 있다.
다만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심리는 ‘인지적 불협화(Cognitive Dissonance)’다. 쉽게 말하면 트렌드를 거부하면서도 소속되고 싶은 욕망이다. 소비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싶지만 완전히 소외되긴 싫은’ 상반된 욕망을 동시에 가진다. 그래서 트렌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미세한 변주를 찾는다. 예를 들어 ‘요즘 유행하는 무알코올 맥주’ 대신 ‘직접 선택한 마이크로브루어리의 로컬 논알코올 라거’를 마시는 식이다. 소비자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나답게’ 소비하기를 원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대형 브랜드들이 ‘반(反)보편적 캠페인’을 내세우는 이유다. 나이키는 개별 고객의 데이터보다 실시간 자기표현을 중시한 캠페인으로 전환했고, 스타벅스는 인공지능(AI) 기반 추천을 줄이고 매장 단위의 커뮤니티 콘셉트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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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음료 시장은 지금 ‘알고리즘의 틀 밖’에서 식탁을 다시 구성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소비자는 데이터의 완벽함보다 자신의 미묘한 직감과 선택을 더 신뢰하며, 이는 선택의 주도권을 인간에게 되돌리는 움직임이다.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취향을 끌어안아야 한다. 대량 생산의 균질한 맛보다 ‘개인화된 경험’과 ‘스스로 고른 스토리’를 소비하려는 흐름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한 끼의 식사조차 ‘자기표현의 확장’이 된 시대에 미래 식음료(F&B) 마케팅은 인간의 리듬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소비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그들이 스스로 탐색할 여백을 남기는 브랜드만이 ‘안티 알고리즘 세대’ 식탁 위에 남게 될 것이다.
김유경 푸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