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달리기 도심서 축제 역대 최다 2만2800여 명 참가 하프코스 여성 참가 매년 늘어 74세 권오갑 HD현대 회장 완주
2025 서울달리기 참가자들이 12일 서울 청계광장 앞 세종대로를 출발하고 있다. 동아미디어센터에 설치돼 시험 운영 중인 국내 최대 미디어 사이니지 ‘룩스(LUUX)’에 참가자들의 레이스가 생중계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마스터스 러너의 축제인 2025 서울달리기(서울시, 동아일보 공동 주최)가 12일 열렸다. 올해 대회에는 역대 최다인 1만2800여명이 참가했다. 서울 청계광장 앞 세종대로를 출발한 참가자들은 동대문, 남대문 등을 거쳐 서울광장 옆 무교로로 골인했다.
서울달리기는 하프코스와 11km 코스 두 부문으로 나뉘어 열린다. 올해는 전체 참가자 중 하프코스 참가자가 9100여명에 달했다. 특히 하프코스 여성 참가자가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25 서울달리기 참가자들이 서울 청계광장 옆 세종대로를 출발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날 하프코스를 처음 뛰었다는 이수민 씨(26)는 “늘 10km만 뛰었는데 나를 러닝에 입문하게 한 친구가 ‘최고는 서울달리기다. 첫 하프코스 데뷔를 강렬하게 해봐라’라고 추천해 줘서 도전하게 됐다”며 웃었다.
이 씨는 자신에게 서울달리기 참가를 추천한 친구가 최근 아킬레스건을 다쳐 이번 대회에 홀로 참가했다. 이 씨는 “평소에는 갑천(대전)을 혼자 뛴다. 11km 이상을 뛴 건 오늘이 처음이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힘이 났다”고 했다. 데이터사이언스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그는 “내게는 올해 가장 큰 목표였던 대회다. 이제는 다시 연구하러 가야 한다”라며 웃었다.
2025 서울달리기 하프코스 참가자들의 레이스 모습.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김소정 씨(43)도 이날 처음으로 하프코스에 도전해 완주에 성공했다. 김 씨는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하프코스를 많이 뛰어서 나도 덩달아 뛰게 됐다. 첫 도전이어서 어렵긴 했는데 완주해서 기쁘다”고 했다. 김 씨는 “대회가 질서정연하게 진행돼 좋았다. 앞으로 풀코스에도 도전할 생각인데 그때도 완주를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025 서울달리기 참가자들이 서울 청계광장 앞 세종대로를 출발해 종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해 대회까지 레이스 초반에 포함됐던 광화문∼청와대를 지나 경복궁 담벼락을 한 바퀴 도는 코스는 사라졌다. 2022년 대회 때부터 지난해까지 포함됐던 이 코스는 서울의 역사와 현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경복궁 인근 진입 때 도로 폭이 좁아져 병목현상이 발생하곤 했다. 부상 위험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고 기록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올해부터는 레이스 출발 후 청와대로 향하는 오르막을 뛰는 대신 종로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곧장 진입한다. 오르막 없는 평탄한 코스라 초반 페이스 조절이 더 쉬워졌다. 러너들에게는 개인 최고기록(PB) 경신을 노릴 기회였던 셈이다.
러닝 크리에이터 ‘임바’로 알려진 유문진 씨(35)는 개인 최고기록인 1시간10분24초로 완주해 하프코스 남자부 5위에 자리했다. 유 씨는 “(11km와 하프 코스의) 주로가 겹치지 않아서 달리기 좋았다. 오히려 도심 한 가운데를 달리며 주위 풍경을 더 넓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나란히 11km를 완주한 뒤 결승선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션 블레이클리 씨(왼쪽)와 롭 윌킨슨 씨.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블레이클리 씨는 “코스가 평탄해졌다고 들었는데 체감상으로는 지난번보다 오르막 구간이 더 힘들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보다(웃음). 그래도 오늘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대회에 함께 참가한 유치웅 코치 덕에 기록을 많이 줄였다. (하프코스에 참가한) 유 코치가 반대쪽에서 나를 지나쳐 갔다. 1위로 달리고 있더라. 그가 오늘 1위를 할 것 같다”고 했다. 블레이클리 씨의 코치 유 씨는 이날 1분9분28초의 기록으로 하프코스 남자부 2위로 골인했다.
블레이클리 씨는 이날 결승선에서 롭 윌킨슨 씨(40)와 함께 ‘인증 샷’을 남겼다. 윌킨슨 씨는 한국 생활 6년 차로 주한영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윌킨슨 씨가 “두 아이 피비(9), 마가리타(5)에게 보여주기 위해 뛰었다”고 하자 블레이클리 씨 역시 “저도 해리(6), 레오(5)를 위해 뛰었다”며 웃었다.
내년 결혼을 앞두고 결혼 일자를 적은 풍선을 들고 뛴 조혜원-김성혁 씨 커플.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서울달리기는 서울 도심을 달리며 풍경을 즐기는 ‘펀런’으로도 많은 러너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러닝크루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김성혁(33), 조혜원(32) 씨는 결혼 기념 풍선을 들고 뛰었다. 예비 신부 조 씨는 머리에 면사포도 썼다. 다른 러너들은 이들을 보고 “축하한다”는 인사를 남겼다. 내년 3월 결혼식을 앞둔 조 씨는 “달리면서 (결혼) 축하를 정말 많이 받아서 잘 살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도 “‘감사합니다’라고 계속 외치다보니 힘이 들었다”며 웃었다.
한국 생활 9년 차 유학생 원린지 씨(오른쪽)가 하프코스 완주 후 함께 뛴 동료와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한성대에서 관광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원린지 씨도 지난해부터 1997년생으로 구성된 러닝크루인 ‘소란스런’에서 달리기 시작해 올해까지 2년 연속 서울달리기 하프코스를 뛰었다. 베트남 출신으로 이날 베트남 국기 모양의 머리핀을 달고 뛴 원 씨는 “97년생 소띠들이 모인 러닝크루 친구들이 응원을 많이 해줬다. 같이 고깃집에 가서 단백질 보충을 하기로 했다”며 웃었다.
울산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며 한국에 3년째 거주 중인 아메리제 파운쿠마르 씨(31·남아프리카공화국)는 11km 레이스 완주 후 결승선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파운쿠마르 씨는 “울산, 포항 쪽 대회만 나갔었는데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와보고 싶어서 참가했다”고 했다. 파운쿠마르 씨는 “뛰면서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 걸 좋아한다. 서울달리기를 하면서 이미 서울 관광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이라며 웃었다.
김찬우 씨가 라온, 하온 양을 유아차에 태우고 2025 서울달리기 하프코스를 출발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아차를 밀며 달리는 ‘캥거루 크루’의 아버지들도 아이들과 함께 레이스를 완주했다. 김찬우 씨(34)는 29개월 된 쌍둥이 라온, 하온 양을 유아차에 태우고 하프코스에 출전했다. 김 씨가 10km 구간을 통과할 때부터 잠에 들었다는 아이들은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도 눈을 뜨지 못했다.
레이스를 마친 김찬우 씨가 잠든 아이들과 함께 완주 기념 샷을 남기고 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같은 크루의 조충훈 씨(39)도 이날 둘째 하윤 양을 유아차에 태우고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조 씨는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부터 첫째와 뛰기 시작했다. 혼자 뛸 때는 가볍게 뛰다가 아이랑 같이 뛰면서 본격적으로 달렸다”고 했다. 2년 전 서울달리기에서는 첫째 가윤 양(6)을 태우고 완주했던 조 씨는 이번 대회엔 둘째와 함께 했다. 아내 이민정 씨(36)는 첫째 가윤 양과 함께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조 씨를 반겼다.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였던 권오갑 HD현대 회장(74)은 11km 코스를 1시간27분5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조충훈 씨(왼쪽 위)가 둘째 하윤 양과 하프코스 레이스를 마친 뒤 결승선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 이민정 씨, 가윤 양(오른쪽)과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