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Sonics의 초음파 암 치료기 히스토트립시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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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초음파(ultrasound)라 하면 일반적으로 임신 중 태아 초음파를 떠올린다. 이는 인체 내부로 고주파 음파를 보내 조직에서 반사된 신호를 영상신호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제 초음파는 ‘소리로 암을 치료하는 시대’를 열고 있다. 수술 없이 초음파 에너지를 특정 종양 부위에 집중시켜 파괴하는 새로운 기술은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젠 쉬(Zhen Xu) 교수가 개발했다.
BBC에 따르면, 이 기술은 2000년대 초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 박사과정 학생이던 쉬 교수는 초음파로 병든 조직을 없애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비의 소리가 너무 커서 실험실 동료들이 항의했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초음파의 펄스 빈도를 높이고 각 펄스의 길이를 마이크로초 단위로 줄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 1분 만에 돼지 심장 조직에 구멍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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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트립시를 사용한 초기 임상 연구에서 기술적 성공률이 약 95%(42/44)로 보고되었고, 대부분 환자는 빠른 회복세를 보여 당일 퇴원했다. 그러나 소수(44건 중 3건)의 무시 못 할 합병증 또한 보고되었다. 안전성을 판단하려면 장기적 재발·생존 데이터가 확보되어야 한다.
히스토트립시는 기존의 고강도집속초음파(HIFU)처럼 열로 조직을 과열해 괴사(cook)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포를 물리적으로 분해하는 ‘비열적’ 방식으로 작동 원리가 다르다. 다시 말해 초음파가 만든 미세한 기포가 팽창했다 붕괴하면서 종양 조직을 기계적으로 분해한 후 면역계가 그 잔해를 ‘청소’한다. HIFU와 달리 주변 정상 조직의 손상 위험이 적다.
이 과정은 비독성·비침습적이다. 초음파 평균 조사 시간은 약 34분이며, 준비와 마취 그리고 회복을 포함한 전체 병원 체류 시간은 일반적으로 1~3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대부분의 종양은 한 번의 시술로 대부분 제거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간암 외에 췌장암, 신장암 치료를 위한 초기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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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연구진은 초음파로 혈뇌장벽을 일시적으로 열어 항암제가 더 잘 전달되게 하거나, 방사선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성공하면 약물 전달 효과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으며, 방사선 치료의 경우 더 낮은 용량으로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HistoSonics의 초음파 암 치료기 히스토트립시 시스템.
물론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초음파가 뼈를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골종양에는 적용이 어렵고, 폐처럼 기체가 많은 장기에서는 주변 조직 손상 위험이 있어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장기적인 재발률 데이터도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일부 연구자들은 히스토트립시가 암 조직을 분해할 때 이론적으로 부서진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퍼질 위험을 제기한다. 현재까지의 동물 연구와 초기 임상 데이터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장기적인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
몇몇 한계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평이다. 히스토트립시는 비침습·비독성적인 정밀 종양 제거 기술로서, 기존의 수술·항암·방사선 치료를 보완할 중요한 도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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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내에선 아직 히스토트립시를 도입한 곳이 없다. 다만 일부 연구자들이 이를 이용한 간 섬유화·간 조직 파괴 관련 동물 연구 및 기초·중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어 머지않아 환자 치료에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권에선 홍콩의 사설 병원인 글렌이글스(Gleneagles)에서 이 치료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또한 홍콩 대학, 홍콩 중문 대학교, 싱카포르 국립 암센터 등이 도입 계획을 밝혔으며 일본도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