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유품을 정리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코스를 상세하게 적은 메모를 발견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걷는 걸 무척 좋아한 아내가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소망한 걸 뒤늦게 알게 된 것.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총 156.5㎞인 서울둘레길을 걷고 퍼스널 트레이닝(PT)도 받으며 준비했다. 한데 출발 두 달 전인 지난해 7월 신우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절망감에 미칠 것 같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기도하다 깨달았다. 데려가시든, 고쳐 다시 쓰시든 신의 뜻에 맡기겠다고.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명예교수(69)가 삶의 고비 고비를 겪으며 성찰한 바를 담은 시산문집 ‘사랑하는 당신에게: 함께 걷는 길 위에서’(요세미티)를 24일 출간했다. 시와 산문을 같은 제목으로 각각 나란히 써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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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문집 ‘사랑하는 당신에게’
지난해 9월 떠날 예정이던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내와 마음으로 함께 걷겠다”며 고대했다. 하지만 출발을 두 달 앞두고 암 판정을 받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들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악몽 같은 현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뜬 눈으로 지새다 명동성당을 찾아 눈물의 고해를 하며 모든 걸 신께 맡기기로 했다. 놀랍게도 평온이 찾아왔다.
항암 치료 후 수술을 받았지만 또 다시 절망적인 소식을 듣는다. 암이 전이됐다는 것. 가족들은 눈물을 쏟았지만 저자는 마음을 다잡는다. 태어날 때 위급 상황으로 죽을 뻔했기에 일흔 가까이 산 것만으로도 큰 복을 받았다며. 그는 “(신이) 일찍 부르시면 아내에게 가서 좋고, 좀 더 살게 하시면 자식들과 함께 있어 좋은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아파 보니,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으며 음식을 자유롭게 먹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김치찌개를 실컷 먹을 수 있는 날을 소망하며 하루하루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저자가 걸어온 길도 생생하게 담았다. 가세가 기울어 판잣집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사는 현실에 충격 받은 까까머리 중학생은 “이기 우찌된 겁니꺼? 말도 안 돼예!”라며 마당에 주저 앉아 땅을 치며 통곡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콩나물 버스’에 가방만 빨려 들어간 채 버스가 떠나버려 발을 동동 구르며 가방 찾기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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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환자로 지내며 그가 가장 많이 느낀 건 감사함이다. 회복을 기원하는 가족과 친구·지인, 기도해 주시는 신부님, 애써주는 의료진, 치료비 부담을 줄여준 나라까지.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고통을 신이 지워주셨다고 말한다.
절망적인 상황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곡진하게 써내려간 고백이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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