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ke Down! 뚝섬한강공원
용인 에버랜드에 지난 26일 개장한 케이팝데몬헌터스 테마존.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6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는 지하철 위에 푸른색 호랑이 ‘더피’가 올라가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테마존’이 개장했다. 세계 최초로 넷플릭스와 손잡고 문을 연 테마파크다. 케데헌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소다팝’과 ‘골든’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관람객들은 케데헌 세계관을 맘껏 즐겼다.
용인 에버랜드에 지난 26일 개장한 케이팝데몬헌터스 테마존. 헌트릭스 멘버들이 비행기에서 먹던 김밥, 떡볶기, 라면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헌트릭스가 비행기에서 먹던 김밥과 라면 떡볶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청담대교를 건너는 지하철에서 악귀와 싸우며, 붉은 불꽃 피어 오르는 악령의 세계에서 사자보이즈 갓을 쓰고 포즈를 취했다.
용인 에버랜드에 지난 26일 개장한 케이팝데몬헌터스 테마존.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케데헌은 외국인의 서울 관광 패턴을 바꾸고 있다. 그동안은 경복궁 청계천 종로 홍대 같은 구도심과 젊은 상권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잠실주경기장과 롯데타워, 뚝섬한강공원과 청담대교, 경동시장, 낙산공원, 국립중앙박물관 등 케데헌에 나온 곳을 성지순례하듯 여행한다.
용인 에버랜드에 지난 26일 개장한 케이팝데몬헌터스 테마존.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4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뚝섬한강공원. 오후 8시 예정된 서울드론라이트쇼를 보러 낮부터 인파가 밀려들었다.
지난 14일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에서 열린 서울드론라이트쇼.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앞서 7일 케데헌 OST에 맞춰 드론 2000대가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 캐릭터로 밤하늘을 수놓은 이후 주말마다 장관을 이룬다.
지난 14일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에서 열린 서울드론라이트쇼.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평일에도 많은 외국인이 뚝섬한강공원을 찾는다. 국내 유일 복층 교량인 청담대교는 케데헌에서 헌트릭스 3명이 지하철을 타고 악귀들과 싸우던 장소다.
뚝섬한강공원 청담대교 앞에 외국인 관광객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관광객들은 청담대교 아래 한강 둔치 계단에 앉아 지하철이 위로 지나갈 때마다 휴대전화를 치켜들고 사진을 찍었다.
청담대교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는 ‘테이크다운(Take Down)’. 강렬한 박자에 카리스마 넘치는 가사가 압권이다. ‘이제 너희를 걷어차 밤으로돌려 보낼 시간이야’ ‘고통 속에서 산산이 조각낼 거야!’ ‘너희들은 울며 애원하겠지만 결국 다 쓰러질 거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데몬헌터스의 ‘HAN의원’ 장면. 넷플릭스 화면 캡쳐
그러나 헌트릭스 리더 루미는 이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악귀를 제거하는 헌터이면서 악귀 문양을 몸에 지닌 이중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악을 소멸시켜야 한다면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루미는 아팠다. 중요한 신곡 발표를 앞두고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케데헌 속 ‘HAN의원’ 건물의 실제 모델이었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서울한방진흥센터.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헌트릭스 멤버들이 루미의 목소리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HAN의원’.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인근 서울한방진흥센터는 HAN의원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케데헌 속 ‘HAN의원’ 건물의 실제 모델이었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서울한방진흥센터.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조선 시대 백성을 구휼하고 진료한 보제원(普濟院) 터에 지은 한방진흥센터은 벽돌 콘크리트 건물이 목조 한옥을 이고 있는 모습인데 케데헌 속 HAN의원과 흡사하다.
케데헌 속 ‘HAN의원’ 건물의 실제 모델이었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서울한방진흥센터.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안경을 쓴 HAN의사는 루미에게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 법”이라며 “벽을 겹겹이 쌓았군요”라고 말한다. 루미가 목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속 비밀’ 때문에 벽을 쌓은 사실을 간파한 것.
서울한방진흥센터에 마련된 HAN의원 기념사진 부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케데헌 속 ‘HAN의원’ 건물의 실제 모델이었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서울한방진흥센터.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곳 한의약박물관에서는 조선 궁중 내의원 의관과 의녀 복장으로 갈아입고 한방 역사를 담은 전시를 볼 수 있다. 외국인에게는 약초를 넣은 족욕 체험이 가장 인기다. 한방 마사지, 한방 뷰티, 약선 음식, 한방 카페도 빼놓을 수 없다. 스트레이키즈와 트와이스 팬이라는 일본인 미하루 씨는 “간호학을 전공하는데, 케데헌을 보고 한의학에 관심이 생겨 찾아왔다”고 했다.
케데헌 속 ‘HAN의원’ 건물의 실제 모델이었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서울한방진흥센터.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낙산공원, 한양을 지키는 ‘황금 혼문’
케데헌에 등장하는 고대의 데몬 헌터. 넷플릭스 화면 캡쳐
‘우리 노래 부르리라. 굳건한 이 소리로 이 세상을 고치리라.’
케데헌 오프닝에서는 국악이 흐른다. 무속인 복장의 세 여성이 태극 문양을 연상케 하는 춤선을 선보이며 악귀를 무찌른다. 케데헌은 한국 문화와 동양철학에 현대인의 외로움까지 담아 어른도 사로잡는다. 세계 시청자 반응을 담은 유튜브 중에는 주인공에 감정이입해 눈물 짓는 사람이 많다. 도대체 케데헌을 보고 왜 성인들은 울까?
한양도성 성곽길에서 내려다본 동대문 풍경.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그 해답을 찾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낙산공원까지 성곽 길을 걸었다. 흥인지문에서 한양도성으로 오르는 길, 솜털이 보송보송한 수크렁이 바람에 흔들린다. 성곽 길 이화마을의 전망 좋은 카페도 특수를 누린다.
이화마을 카페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풍경.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에서 온 뱅상 씨(27·엔지니어)는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을 바라보며 자연과 함께 걷는 성곽 길은 다른 해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울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낙산공원 성곽길.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낙산공원은 케데헌 스토리의 중요한 변환점이기도 하다. 서울을 감싼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잇는 한양도성이 서울을 외적에게서 지키는 ‘혼문’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케데헌 속 낙산공원 성곽 길은 해 질 녘 어스름한 햇빛을 받아 첫 데이트에 나선 사자보이즈 리더 진우와 루미의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 낸다.
케데헌에서 진우와 루미가 낙산공원 성곽길을 걷는 장면. 넷플릭스 화면 캡쳐
루미는 ‘테이크다운’에서 사자보이즈로 분장한 악령에 대해 ‘추악한 껍데기에 갇힌 무너진 영혼’ ‘감정 없는 악마’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루미는 성곽 길을 걸으며 진우의 깊은 상처와 아픈 기억을 듣는다. 악령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최후의 대결을 펼치는 남산에서 ‘테이크다운’을 부르다 루미는 수만 관중 앞에서 자신이 헌터이면서도 악마 문양을 가진 괴생명체라는 사실이 폭로된다. ‘산산이 부수어 버리겠다’는 노랫말의 화살이 거꾸로 자신에게 돌아왔다. 인생 절정의 무대에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낙산공원 성곽길.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한양도성이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조선을 지켜 주지 못했듯, ‘황금(golden) 혼문’이 모든 악을 물리치고 평화로운 세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 불과했다. 희망은 혼문이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케데헌의 메시지다.
● ‘통(通)’의 상징, 푸른 호랑이
진우와 루미 사이를 오가며 소통하는 푸른 호랑이 더피. 넷 플릭스 화면 캡쳐
더피는 진우의 반려 동물. 진우와 루미를 오가며 ‘만날래?’ 같은 소식을 전한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선과 악,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두 세계를 통(通)하게 하는 메신저 같은 존재다.
까치호랑이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기념품이기도 하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토요일이던 20일, 개장 30분 전인 오전 9시반부터 중앙박물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문이 열리자 일부 관광객은 인기 ‘뮷즈(뮤지엄+굿즈)’를 사러 기념품 매장으로 뛰엇다. 올 상반기(1~6월) 중앙박물관 뮷즈 매출은 지난해보다 34% 증가해 역대 최대 115억 원에 이르렀다. 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올 1~8월 관람객은 432만8979명. 지난해 같은 기간 243만9237명보다 무려 77.5% 늘었다. 이 추세라면 올해 500만 명을 넘게 돼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 톱 5에 들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품절사태를 빚고 있는 뮷즈 까치호랑이 배지.
서울 청계천에 있는 서울컬쳐라운지에서 외국인들이 낙산공원과 호랑이 민화 색칠하기 수업을 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raphy@donga.com
서울 청계천에 있는 서울컬쳐라운지에서 외국인들이 낙산공원과 호랑이 민화 색칠하기 수업을 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raphy@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