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1534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광고 로드중
김민 문화부 기자
“그 ‘여자 누드(donna nuda)’를 꼭 갖고 싶은데, 티치아노가 다른 사람한테 팔아 버리면 어떡하죠?”
노심초사하던 공작 아들은 수개월 뒤 공작의 지위를 물려받고 마침내 그 그림을 손에 넣게 됩니다. 이 그림은 티치아노의 대표작이자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입니다.
광고 로드중
우르비노의 공작은 이 그림에서 무엇을 보고 반한 걸까요. 우선 진주 귀걸이를 하고 곱슬곱슬한 금발을 풀어 헤친 여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여인의 외모가 예쁘다고 모든 그림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건 아니죠. 티치아노는 그림 속 몇 가지 장치를 통해 여인의 관능적인 모습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흰 시트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있는 여인의 몸이 만들어내는 곡선입니다. 이 곡선에 빼앗겼던 시선을 전체 그림의 구도로 옮겨 보면, 그림의 다른 곳은 똑바로 그은 직선이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침대 뒤로 펼쳐진 바닥에 그려진 격자무늬와 수납장, 벽지, 창문에 있는 기둥이 그러합니다. 이런 여러 개의 직선 가운데 그려진 몸의 커다란 곡선은 혼자 굽이치고 있으니 더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곡선과 맞닿은 직선 중 가장 강렬한 것은 뒤편 녹색 파티션이 만드는 선입니다. 이 파티션의 직선은 그림을 마치 절반으로 뚝 자른 듯 그려져, 여인의 얼굴과 상반신을 관객만 보는 것 같은 사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게다가 커다란 곡선인 여인의 몸을 티치아노는 얇은 물감층을 겹겹이 쌓아 올려 반투명으로 티 없이 반짝이는 도자기처럼 그려내고 있습니다. 꽃무늬가 그려진 푹신한 매트리스와 바삭거리는 흰색 시트, 그 위에 포근하게 꼬리를 말고 누워 있는 강아지와 매끈하게 묘사된 여성의 피부는 경직된 그림의 선들을 가로지르며 부드러운 느낌을 극대화합니다.
광고 로드중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고대 신화 속 ‘비너스’를 표현했다는 해석이 제기되고, 그 덕분에 이 그림은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그 단서 중 하나는 여인이 들고 있는 붉은 꽃, 장미입니다.
장미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뜻하는 주요 상징입니다. 열정적인 사랑, 쾌락, 육체미를 뜻하죠. 또 창가에 놓여 있는 머틀(myrtle) 화분 역시 고대부터 비너스와 연결되는 식물로 불멸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단서는 포즈입니다. 그림 속 여인은 왼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자주 묘사된 자세로 ‘비너스 푸디카(Venus pudica)’라고 부릅니다. 비너스 푸디카는 ‘수줍은 비너스’라는 의미인데, 여자가 자신의 몸을 가리는 모습을 표현해서 겸손, 순결, 부끄러움의 미덕을 상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 속 여인은 수줍기는커녕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쏟아질 듯 과감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수줍은 비너스’에서 모티프를 따왔지만 ‘수줍지 않은 비너스’인 것입니다.
엘리트를 위한 핀업(pin-up)?
광고 로드중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 공작 ‘귀도발도 2세 델라 로베레’의 초상화. 예일대 미술관 소장품.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9세기 유명 예술가도 이런 시각을 그림으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모티프로 해서 ‘올랭피아’를 그린 에두아르 마네입니다. 마네는 신화 속 여인을 가장한 비너스 대신 파리의 유명했던 고급 창부인 올랭피아의 누드를 그려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죠. 마네는 ‘올랭피아’를 통해 고전으로 여겨지는 르네상스 시대 비너스 그림이 사실은 관음증과 욕망에 관한 것이 아닌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16세기 베네치아의 상황을 바탕으로, 티치아노의 표현이 오히려 여성의 주체적 시선을 표현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비너스 푸디카’의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관객을 똑바로 쳐다보는 ‘수줍지 않은 비너스’가 시대를 앞선 표현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노골적인 시선의 대상, 아니면 매력을 과감하게 뽐내는 사람. 독자 여러분의 눈에는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어떻게 보이나요?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