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다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하지만 알아두면 분명 유익한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일 수도 있고 최신 트렌드일 수도 있죠. 동아일보는 과학, 인문, 예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 이런 게 있었어?’라고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들을 매 주말 연재합니다.》
경기 불황의 여파는 미술품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작품 가격이 최고가를 경신하며 투자 열풍이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판매가 줄고 경매 낙찰가도 하락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시기일수록 진정한 명화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말한다. 예술은 투자 대상이기 이전에 시대의 고통을 견뎌낸 감정의 기록이자 회복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 세계는 그런 점에서 깊은 위로를 전한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두 거장의 명화들은 시대를 넘어 인간의 감정에 깊이 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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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쫓은 화가, 클로드 모네
클로드 모네, ‘인상-해돋이’. 1872년. 프랑스 파리 마르모탕모네미술관. 프랑스 북부 도시 르아브르의 항구에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담았다. 1874년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에 소개돼 ‘인상주의’라는 명칭을 얻었다.
150년이 흐른 지금, 모네의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예술의 대명사가 됐다. 2021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모네의 ‘수련’은 7040만 달러(당시 약 805억 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같은 해 삼성가(家)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의 ‘수련이 있는 연못’과 주제와 제작 시기가 유사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모네의 삶은 빛을 향한 고독한 투쟁이었다. 긴 무명 시절과 생활고, 평단의 외면, 가족의 죽음, 그리고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던 말년…. 그럴수록 그는 집요하게 빛에 집착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야외에서 스케치한 뒤 실내에서 그림을 완성하던 당시의 관행과 달리, 모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 속에서 붓을 들었다.
그가 택한 전략은 ‘연작(連作)’이었다. 같은 풍경도 시간대와 계절,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는 점에 착안해 하나의 대상을 반복해 그렸다. 건초더미 연작으로 주목받은 이후 남은 생을 수련에 바쳐 250점을 남겼다. 그에게 수련은 내면의 심연을 비추는 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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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1917∼1920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최근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모네의 수련: 물과 빛의 마법’은 그 초격차를 확인할 기회다. 캐나다 논픽션 작가 로스 킹의 ‘광기의 마법: 클로드 모네와 수련 그림’을 원작 삼아 인상주의 창시자인 모네의 미학적 유산을 조명한다. 모네의 수련은 생의 끝자락에서도 빛을 붙잡으려 한 구원의 흔적이다. 서울 세종미술관에서는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 전시도 열리고 있다.
해바라기를 분신처럼 사랑한 고흐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1888년.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수련이 모네의 영혼을 비췄다면 해바라기는 고흐 자신을 투영한 분신이었다. 양 교수는 “겨울이 길고 추운 네덜란드에서 자란 고흐는 태양을 동경했고 해바라기를 자신의 분신처럼 사랑했다”고 설명했다. 고흐의 해바라기에는 네덜란드 정물화의 전통, 즉 ‘바니타스(Vanitas)’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바니타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싱싱한 해바라기뿐 아니라 시들어가는 해바라기까지 함께 그린 고흐의 작품은 인생의 유한함을 정면으로 마주한 작가의 사유를 드러낸다.
고흐는 37년의 짧은 생애 중 화상(畫商)으로 7년, 화가로 10년을 살았다. 16세부터 23세까지는 학교에 다니는 대신 삼촌이 운영하던 화랑에서 그림을 사고 팔았다. 27세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엔 경제적 궁핍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10년간 무려 2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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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1888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프랑스 아를에서 그린 고흐의 대표작.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밤이 주는 느낌을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평생 미술계의 외면을 받았던 고흐가 사후에 별처럼 빛날 수 있었던 건,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 덕분이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에 테오도 요절하자 요한나는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와 고흐의 작품을 정리하고 전시하며 고흐를 미술사에 남겼다.
고흐의 삶은 애니메이션 영화 ‘리빙 빈센트’(2017년)로 조명됐다. 그의 작품 세계를 디지털 영상과 소리로 재해석한 몰입형 전시는 전 세계 수십 개 도시에서 순회 중이다. 최근 국립세종수목원에서는 ‘한여름 밤의 고흐’ 전시도 열리고 있다. 절망의 끝에서도 빛을 그린 두 거장의 명화는 오늘을 버텨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고통은 지나가고 예술은 남는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