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초반부터 가족장에 대해 의아하다는 시선이 많았다. 직장에 다니는 가족들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우리 입장과는 달리, 장례는 널리 알려야 예의라는 반응이 강했다. 부고를 꼭 회사 게시판에 올려야 한다거나, 대표 한 명쯤은 찾아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안은 고마웠으나 유족의 의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듯해 아쉬웠다.
그럼에도 가족장을 치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장례는 기대 이상으로 커다란 울림을 남겼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이유에서 그 선택이 옳았다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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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장례식은 달랐다. 순수하게 조문만을 위해 오신 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응당 손님들을 대접하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오롯이 어머니께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울고 웃었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가 크게 다가왔다. 형제 중 한 명이 “우리와 계시는 걸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다”고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가족 간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졌다. 우리 형제는 자라서는 긴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학교 졸업 후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느라 주변을 챙길 여력이 부족했다. 저마다 가정을 꾸린 뒤로는 거리가 한층 멀어졌다. 기껏해야 부모님을 통해 안부를 전해 듣는 게 고작이었다. 막역했던 피붙이인데도 때로는 이웃사촌보다 소원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한자리에 앉아 있기조차 어색했다. 관심사가 달라 이야기가 겉돌았다. 식성도 말투도 달라져 마치 딴사람인 양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세월의 벽이 허물어졌다. 공통의 슬픔 앞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어머니의 빈자리를 같이 메워 나갔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구나.’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불쑥 든 생각이었다.
셋째,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과거에 필자는 성대하고 화려한 경조사가 지극히 당연한 줄 알았다. 부모님 장례식에 문상객이 많으면 먼 곳에 계신 부모님께서 대견해하실 듯했고, 자녀 결혼식에 하객이 넘치면 아이의 기가 살아날 거라 확신했다. 그런 북적임이야말로 가시는 부모님을 위한 마지막 효도이고, 시작하는 아이를 위한 기본적인 책임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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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은 또 있었다. 예상외로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았다. 올 사람이 없으니 소규모 장소를 택했고 음식도 최소한으로 마련했다. 가족끼리 일손을 모은 점도 비용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보통은 조의금을 받아 상을 치른다는 인식이 있지만 언젠가 되갚아야 할 빚이 생기지 않자 마음마저 가벼웠다.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식장 안에서, 자식에게 짐이 될까 늘 염려하셨던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셨을까.
사실 고민이 많았다. 그동안 냈던 부조금이 아깝기도 했고, 친지들에게 성의 없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우려스러웠다. 장례식장을 오가는 이들도 신경 쓰였다. ‘왜 저렇게 비어 있을까?’ ‘사회생활을 잘못했나?’라는 뒷말을 할까 봐 두려웠다. 실제로 낯선 사람들이 빈소 안을 힐끗힐끗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중엔 무뎌졌다.
지금 되돌아봐도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한산한 장례였지만 참으로 따뜻하고 의미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조문객 수나 외형적 격식보다 중요한 건 고인을 향한 진심과 가족 간의 위로였다. 어머니가 떠나신 자리에 남은 건 아쉬움보다도 감사였고, 그 여운은 긴 시간 우리 곁에 머물 것 같다. 조용히 하지만 깊이, 우리는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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