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이번 전시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이 공동 주최했다. 올해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일본실을 연 것을 계기로 두 박물관이 교류를 시작한 지 20년 되는 해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전시를 위해 두 박물관이 더욱 정성을 들여 준비한 티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총 62점의 전시물 중 무려 40점이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이었다. 이 중 7점은 일본 중요 문화재이고, 38점은 한국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전시는 일반 전시처럼 장르로 구분하거나 시대 순으로 구성하지 않고, 미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일본미술의 안과 밖, 즉 내면에 깃든 정서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꾸밈의 열정, 절제의 추구, 찰나의 감동, 삶의 유희)으로 구성됐다. 일본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 입장에선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순서에 따라 감상하다 보면 일본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깊이 느낄 수 있으리라고 본다. 관람객들이 네 가지 시선에 맞춰 구성된 전시 중 마음이 끌리는 단 하나라도 기억에 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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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에서 마음을 울린 두 개의 잔 ‘구로라쿠 찻잔’과 ‘아오이도 찻잔’은 모두 두 번째 전시(절제의 추구) 코너에 나란히 전시돼 있다. 두 찻잔 모두 16세기에 만들어진 일본의 다도 ‘와비차(詫び茶)’를 상징한다. 장식이 절제돼 소박하다 보니 관람객이 자칫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전시장에서 처음 두 잔의 실물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흥분됐다. 흥분된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고 한참을 고생했다.
‘와비차’란 일본에서 센노 리큐(千利休·1522∼1591)에 의해 대성한 다도 문화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에 절정을 이뤘다. 정신세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게 특징이다. 좁은 공간의 절제된 다실에서 소박한 다도구를 갖고 부족함 속에 깊은 마음의 세계를 추구한다. 당시 무사들도 마음을 다스리며 교양을 갖추기 위해 다도를 즐겼다. 리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98)의 다도 사범이었다. 하지만 1591년 그는 도요토미의 명령으로 활복당했다. 도요토미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1년 전 일이다.
리큐에게 ‘와비차’의 이상적인 찻잔으로 선택된 것이 다름 아닌 ‘이도 찻잔’이다. 잔의 굽와 주변에 가이라기(梅花皮·유약이 녹아서 뭉친 현상)가 있는 것이 특징인 ‘이도 찻잔’은 조선에서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만 만들어졌다고 획인 된다. 그런 귀한 ‘이도 찻잔’은 일본에서 ‘와비차’의 찻잔으로 재탄생됐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도 찻잔’은 한국의 도자기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미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것이 일본미술 전시실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키는 까닭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옆 ‘구로라쿠 찻잔’은 리큐가 ‘와비차’의 이상적 잔으로 디자인한 잔으로 ‘이도 찻잔’의 또 다른 모습이다. 황금 다실을 만들어 황금 잔으로 차를 마셨던 도요토미가 가장 싫어했던 잔이기도 하다.
특별전 전시를 관람한 날 20년 전 함께 일본 다도를 공부했던 한국인 도예가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아오이도 찻잔을 보러 왔다. 그동안 계속 이도 찻잔을 만들어 왔다”고 했다. 한국에 귀향 온 찻잔 덕분에 나는 그날 또 하나의 일기일회(一期一会), 소중한 만남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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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