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소장 89명의 143개 작품 세종미술관서 8월 31일까지 전시
눈처럼 하얗게 만개한 꽃들, 초록빛 가득한 언덕과 나무, 푸른 하늘을 풍성하게 채운 구름. 기분 좋은 화사함을 선사하는 클로드 모네의 ‘봄’이다. 넓은 붓터치로 바다와 하늘, 돛단배와 성을 맑게 담은 폴 시냑의 ‘라 로셀’은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참 동안 보게 된다. 금박 배경에 팬지 한 송이를 든 붉은 머리카락의 창백한 여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레지나 코르디움’이다. 라파엘전파 작가들의 모델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시달로, 로세티와 파란만장한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로세티는 그녀가 눈을 감기 1년 전인 결혼한 직후 이 그림을 그렸다.
클로드 모네 ‘봄’. 당시 작품을 인정받지 못해 모네는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지만 이후 뉴욕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Claude Monet, The spring, oil on canvas, 1875, 58 x 78,5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폴 시냑 ‘라 로셀’. 넓은 붓터치로 맑게 그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준다. Paul Signac, La Rochelle, 1912, Oil on canvas. Johannesburg Art Gallery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레지나 코르디움’. 라파엘전파 작가들의 모델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시달로, 로세티와 결혼했지만 1년 후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눈을 감기 1년 전인 결혼 직후 그린 작품이다. 엘리자베스 시달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유명 작품 ‘오필리아’의 모델이기도 하다. Dante Gabriel Rossetti, Regina Cordium, oil on panel, 1860, 25,4 x 20,3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클로드 모네의 ‘봄’(가운데)를 돋보이게 배치한 ‘모네존’.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
●네덜란드 황금기, 인상주의…9개 주제
전시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미술 △인상주의 이전 △인상주의 △인상주의 이후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20세기 컨템포러리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예술 △필립스 부부까지 총 9개 주제로 구성했다.
안토니오 만치니 ‘필립스 부인’. 46세 때의 모습이다. Antonio Mancini, Lady Phillips, oil on canvas, 1909, 90,1 x 76,5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필립스 부부존’.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AG)를 설립한 필립스 부부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
꽃 그림으로 이름을 떨친 다니엘 세이거스의 ‘꽃병에 꽂힌 꽃’에는 줄무늬 튤립이 눈길을 끈다. 벨기에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 정착했던 그는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인 튤립을 담아냈다. 튤립 중에서도 줄무늬 튤립은 특히 가격이 비싸 구근 하나가 당시 집 한 채 값까지 치솟기도 했다고 한다.
다니엘 세이거스 ‘꽃병에 꽂힌 꽃’. 줄무늬 튤립은 매우 비싸 튤립 구근 하나가 당시 집 한 채 값까지 치솟기도 했다고 한다. Daniel Seghers, Flower in a vase, oil on oak panel, pre-1661, 51 x 39,2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조지프 말로드 월리엄 터너 수채화 ‘안더나흐의 해머스타인’. 윌리엄 터너의 초상화는 20파운드짜리 지폐에 사용될 정도로 그가 영국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종이에 그린 수채화는 작품을 옮길 때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Hammerstein below Andernach, watercolor, 1817, 19,5 x 35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존 에버렛 밀레이의 ‘한 땀! 한땀!’(왼쪽) 등이 있는 ‘영국존’. 밀레이는 라파엘전파의 창립 멤버였지만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일상 속 장면을 우아하게 그린 초상화는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다른 작가들로부터 상업적인 그림 양식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
●밀레, 드가, 로댕…눈이 즐겁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종이에 목탄으로 그린 ‘농군’은 농민의 삶을 작품에 담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그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밀레’로 불리는 요제프 이스라엘이 그린 ‘목가’는 너른 벌판이 펼쳐진 가운데 나무 옆을 걸어가는 남성과 여성 농민의 모습이 소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네의 스승인 외젠 부댕의 작품도 놓쳐선 안 된다. 튜브 물감이 발명되면서 화가들은 실내를 벗어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부댕은 풍경을 야외에서 그리기 시작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바다 풍경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아르장퇴유의 보트들’, ‘트루빌 항구’, ‘트루빌 부두’는 캔버스의 절반 이상을 하늘로 채우고 구름의 움직임을 빠른 터치로 사실적이면서도 속도감 있게 담아냈다. 시원하고 탁 트인 느낌을 준다.
외젠 부댕 ‘트루빌 항구’. 캔버스의 절반 이상을 하늘로 채우고 구름의 움직임을 빠른 터치로 사실적이면서도 속도감 있게 담아냈다. Eugene Louis Boudin, Trouville Port, 1893, Oil on canvas. Johannesburg Art Gallery
에드가 드가 ‘두 명의 무희들’. 왼쪽에 있는 발레리나의 일부를 일부러 그리지 않아 보이는 것보다 더 넓은 배경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Edgar Degas, Two dancers, pastel on paper, 1898, 50 x 35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폴 세잔 ‘목욕하는 사람들’. 세잔에게 중요한 주제인 생트 빅투아르산과 목욕하는 사람들을 결합했다. Paul Cezanne, The Bathers, colour lithograph, 1898, 42,5 x 64,5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알프레드 시슬레 ‘브뇌 강가’. Alfred Sisley, Riverside at Veneux, oil on canvas, 1881, 59 x 79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빈센트 반 고흐 ‘늙은 남자의 초상’. 종이에 목탄으로 그린 작품으로 고흐는 드로잉을 작품 제작의 근본적인 부분으로 여겼다.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an old man, charcoal on paper, c.1882, 44 x 29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로댕존’에서는 오귀스트 로댕의 브론즈 ‘이브’를 360도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
인상파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아들 루시엔 피사로가 그린 ‘아침 햇살’은 청명한 기운을 머금었다. 피에르 보나르의 ‘봄의 일몰’은 부드러운 스타일과 시적이고 분위기 있는 인상주의 양식을 활용하되 형태를 단순화하고 강렬한 색상을 사용해 추상화 경향을 예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장 기교 돋보이는 판화도
앙리 툴루즈 로트렉의 석판화 ‘코르셋을 입은 여자’, ‘빗질을 하는 여자’도 시선을 붙잡는다. 모델과 발레리나, 거리의 여성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내밀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한 로트렉의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피카소의 석판화 ‘목걸이를 한 여인’, ‘모던 스타일의 흉상’은 단순하면서도 천진한 느낌을 준다. 파스텔로 그린 ‘어릿광대의 두상Ⅱ’에서는 순수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피카소는 평생을 어린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파블로 피카소 ‘어릿광대의 두상Ⅱ’ (가운데) 등으로 구성된 ‘피카소존’.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
모리스 드 블라맹크 ‘홍수’. Maurice De Vlaminck, Floods, oil on canvas, 1935, 73,3 x 92,2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구스타브 쿠르베 ‘에트르타 백악 절벽’. Gustave Courbet, The Etretat cliffs, oil on canvas, 1869, 63 x 76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모리스 위트릴로 ‘육군 병원’. Maurice Utrillo, Military Hospital, oil on canvas, c.1914, 72,9 x 99,7 cmJohannesburg Art Gallery, Johannesburg
프란시스 베이컨의 ‘남자의 초상에 관한 연구’는 고통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크랙!’, ‘금발’은 만화 스타일을 차용한 특유의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자기만의 개성을 지닌 작품에 대해 고민하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책에 빠진 아들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요셉 보이스에 대한 경의를 담아 앤디 워홀이 작업한 ‘요셉 보이스’도 관람객들이 오래 감상하는 작품이다.
남아공의 유명 작가 이르마 스턴의 ‘국화’, ‘녹색 사과들’도 있다. 제라드 세코토의 ‘오렌지와 소녀’는 인종 차별이 심했던 남아공에서 JAG가 처음 소장한 흑인 미술가의 작품이다.
전시 총괄 큐레이터를 맡은 이탈리아 출신 미술사학자·평론가인 시모나 바르톨로나는 “피카소와 로트렉 등은 유화 뿐 아니라 판화에서도 매우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작가들 개개인의 기교가 판화에서도 잘 드러나기에 판화도 자세히 감상하면 전시가 더 흥미로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시장은 유명 미술관의 공간을 모티브로 구성해 주제별로 각각 다른 느낌을 준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열린다. 전시 기간 중 휴관일은 없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7시로, 입장 마감은 오후 6시다. 무료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할 수 있다. 평일에 하루 3회(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김찬용 심성아 등 스타 도슨트가 직접 설명하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무료로 운영한다. 예약하지 않아도 되며 시작 시간에 맞춰 가면 전시장에서 바로 들을 수 있다. 어린이 미술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 연계 특강도 진행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