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권형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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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슨 플랫폼 정당이냐.”
지난달 초 국민의힘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추대론이 불거지자 한 당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 전 총리에게 정당인으로서 정체성이나 동지 의식이 있느냐”며 “당이 법조인, 관료 등을 데려와 뒷바라지만 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총리 추대론의 결말은 알다시피 상상 초월의 대참사였다. 이 참사는 정치 참여 9일 만에 거대 보수 정당의 후보를 넘본 한 전 총리가 자초한 면이 크다. 2일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후보 등록일(11일) 이전까지 단일화가 끝나지 않으면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사실상 시한부 무소속 후보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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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 총리도 문제지만 또다시 당 외부 대선 주자를 수혈하려 한 국민의힘의 습성이 더 문제다.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당시 검찰에서 뛰쳐나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영입한 뒤 전폭적으로 밀어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 본선에서 윤 전 대통령의 자질론, 무속 논란 등이 불거지며 부실 검증이 문제가 되었지만 대안이 없었던 국민의힘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의 정치 경험 부족은 독단과 불통의 태도로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이 기성 정치인과 국회를 무시하는 언행을 하는 데 대해 사석에서 분노를 토로한 국회의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도 당에 대해 부채 의식이 없는 윤 전 대통령을 통제하지 못했다. 역시 정치 경험이 없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세워 윤 전 대통령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당정 갈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비상계엄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또다시 외부 주자에게 운명을 걸었다. 일단 이겨놓고 보자는 심리였다. 한 전 총리를 두고 “정치 경험은 없지만 행정 경험이 50년이라 검사 출신과는 다르다”는 옹색한 논리가 나왔다. “밖에서 용병을 불러다 대통령을 시켰다가 이 꼴이 났는데 또다시 용병을 불러오는 게 맞느냐”는 비판에는 눈감았다.
이처럼 외부 인사를 대선 후보로 옹립하려는 시도는 당내 주자가 말라죽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에 수십 년 헌신해 온 정치인을 무시하는 행태로 비쳐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에게 회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경선 주자로 뛰었던 5선 나경원 의원이 “우리 당은 늘 ‘기승전 용병’”이라고 한탄하고, 소장파인 초선 김재섭 의원이 “대통령 후보를 만들 수 없는 정당이냐”고 자조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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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권형 정치부 기자 buz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