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훈 한서대 헬리콥터조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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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산불은 점점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전 세계 산불을 관찰한 데이터를 21년간 분석했더니 산불이 더 자주, 더 거세게, 더 넓게 번지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기후위기가 만들어 낸 새로운 재난, ‘메가파이어(Mega Fire)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산불의 크기가 달라졌다면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하늘에서의 초동 대응, 즉 산불진화헬기의 전략적 확충과 항공 거버넌스의 체계적 정비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우리나라 산불진화헬기는 산림청의 50대를 중심으로 운용된다. 산불이 험준한 산악 지형을 넘어 민가와 산업시설로 번질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대형 헬기의 집중 투하력이다. 다만, 불길이 커지기 전에 초동 진화하는 데는 중형 헬기의 역할도 필요하다. KA-32나 수리온처럼 2000∼3000L의 물을 담수할 수 있는 중형 헬기는 접근성과 기동성이 뛰어나고, 여러 대가 동시에 투입될 경우 초기 진화 효과를 낼 수 있다. 결국 중·대형 헬기의 조화로운 운용이 메가파이어를 막아내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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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 멈추어선 안 된다. 기령이 오래된 헬기의 신속한 교체와 동시에 하늘 위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 산불진화 항공체계는 산림청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실제로 군, 소방 등의 헬기가 동원되지만 산림청이 ‘명령’이 아닌 ‘요청’만 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대형 산불 상황에서 신속한 전력 집중과 공중 자산의 통합 운용이 필요한 순간에 제도적 한계는 치명적인 지연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항공 거버넌스를 다시 설계할 때다. 단순한 협조를 넘어, 산림청이 중심이 돼 실질적인 지휘권과 자원 통합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산불은 더 이상 ‘산림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안전 문제다.
지자체 임차 헬기의 안전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임차 헬기 운영에 대한 평가와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임차 헬기 조종사에 대한 훈련과 평가 기준도 통일되지 않은 채 업체 재량에 맡겨져 있다. 미국 산림청(USFS)은 조종사의 산불진화 역량을 실비행으로 직접 검증한다.
우리는 이미 메가파이어의 시대에 들어섰다. 그 준비는 헬기를 더 들이는 데서 그쳐선 안 된다. 진짜 준비는 산림청이 주도적으로 헬기를 띄울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 곧 항공 거버넌스를 제대로 갖추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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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훈 한서대 헬리콥터조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