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보타전(오른쪽 건물) 주변 숲의 10년 전(위)과 현재. 2015년 3월 27일과 지난달 31일의 모습이다. 10년 전에 비해 나무들이 자라기는 했지만 그동안 울창해졌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지난달 31일 오후 강원 양양군 강현면의 낙산사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바람이 조금 거셌지만 햇살은 따사로웠다. 사찰 입구에서는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했고,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20년 전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잿더미가 됐던 곳이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경내에 들어서자 곳곳에 화마의 참상을 일깨워주는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밑동이 잘려나간 나무들과 산책로 곳곳에 설치된 ‘2005년 산불발생 및 복구현황’ 안내판, 홍예문 인근에 조성된 화재자료전시장은 당시의 화재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산림 피해 복구가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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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마련된 낙산사 화재자료전시장의 천지인 상징탑. 2005년 화재 때 불 탄 기와를 쌓아 만들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낙산사 화재자료전시장에 자리잡은 산화지 재현장. 2005년 화재 때 불 탄 나무와 그루터기 등을 옮겨다 놓았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화재자료전시장에는 화재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불탄 기와를 쌓아 만든 천지인(天地人) 3개의 상징탑, 불탄 나무와 그루터기를 옮겨 놓은 산화지 재현장 등이 있었다.
이날 낙산사를 찾은 김성철 씨(65·서울 노원구)는 “최근 경남·북 지역에서 대형 산불로 많은 피해가 발생해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이 곳에 와서 보니 산불 피해가 얼마나 크고 후유증이 오래 가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5년 4월 4일 밤 낙산사에서 4.99㎞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맹렬한 기세로 확산됐다. 다음 날 오후 3시 40분경 산불에서 발생한 불씨는 초속 15m가 넘는 강풍을 타고 불화살처럼 낙산사를 공격했다. 진화를 위해 출동한 소방차까지 삼킬 정도로 불길은 맹렬했다. 4월 6일 오전 8시경 불길을 잡기까지 약 16시간 동안 38동의 사찰 건물 가운데 21동이 소실됐고, 낙산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던 산림은 벌거숭이가 됐다. 500년이 넘은 낙산사 동종은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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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동종. 2005년 화재 때 녹아버린 것을 다음해 새롭게 제작했지만 이미 보물 지정이 해제된 뒤였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예전의 울창했던 산림의 모습을 되찾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나무의 수는 화재 이전과 비슷해졌지만 화재 이전 수십 년을 자란 나무들의 몸집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2005년 화재 이후 낙산사 곳곳에는 방수총이 설치됐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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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중 낙산사 종무실장은 “경북 의성 산불로 천년고찰 고운사가 소실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며 “산림 복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예전에 비해서는 부족한 것을 보면 산불로 사라진 산림을 복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고 밝혔다.
낙산사 입구의 홍예문. 2005년 화재 때 소실됐다가 2007년 복원됐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