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방예산 늘리고 TSMC 미국에 1000억 달러 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6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6일 취임 후 첫 각료회의를 가진 자리에서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점령하지 못하게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절대로 코멘트(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그 입장(대만에 대한 방어 의무)에 직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에도 같은 입장을 피력한 적이 있는데, 백악관 복귀 후 이런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3년 9월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을 말하면 거저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단교했지만 안보 지원하는 전략적 모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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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대만에 군사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네 차례나 밝혔다. 이런 입장은 ‘전략적 명료성(strategic clarity)’ 정책에 따른 것이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2년 5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의 군사 개입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것이 우리가 한 약속”이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해 9월 18일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군은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고 군사 개입을 강조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 통일해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인민해방군에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를 지시한 바 있다. 2027년은 중국이 인민해방군을 창설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시 주석이 5년 임기의 3기 집권을 종료하고 제21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통해 추가적인 집권 여부가 결정되는 시점이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대만 통일을 성과로 내세워 장기 집권할 목적으로 2027년 이전에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고 있다.
대만을 격리시키려는 중국
국제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십분 이용해 ‘회색지대 전술(Gray zone tactics)’을 펼 것으로 보고 있다. 회색지대 전술은 전쟁과 평화 사이 ‘회색지대’에서 벌이는 일종의 도발로,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피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정보적 수단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압박을 가하는 행위를 뜻한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사실상 무력 통일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해저 통신 케이블 절단 등을 통해 대만을 격리시킨 사례가 있다. 대만 해경은 2월 25일 대만 본섬과 펑후 제도를 연결하는 해저 통신 케이블 훼손 혐의로 토고 선적 중국 화물선 훙타이호를 나포하고 중국 선원 8명을 억류했다. 올 들어 대만 인근 해역에서 해저 통신 케이블 훼손 사건은 벌써 다섯 차례나 일어났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3건이었다. 대만은 외국과 주고받는 데이터·음성 트래픽의 95%를 14개 해저 통신 케이블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안보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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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당국이 해저 케이블 훼손 혐의로 중국 선적사가 소유한 선적을 나포하고 선원 8명을 구금했다. [대만 해경 제공]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모호성 정책이 시 주석의 모험주의를 자극할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2기 정부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방식이 대만의 안보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넘겨주려는 태도를 지켜보면서 중국이 대만 침공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윌리엄 매튜스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대만과 남중국해 같은 분쟁지역에서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라면서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미국의 결의 부족’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무기 수입 늘리며 굽히는 대만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45%에서 3%대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대만 총통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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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정부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자국을 중국과의 거래 카드로 사용하는 것이다. 빌 에모트 전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배신은 동아시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그랜드 바겐(큰 거래)’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려면 미·중 정상외교의 향배와 미국의 중국 견제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가 중요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