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2월 26일 개봉한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A Complete Unknown)’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극장을 나서는 길. 그런데 이제는 밥 딜런을 모르겠다. 2시간 21분 동안 밥 딜런의 이야기를 봤는데도. 그를 모른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제야 그 유명한 사람을 그 유명한 사람이 연기한 이 영화 제목이 왜 ‘컴플리트 언노운(완전히 낯선)’인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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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전히 기타 하나 멘 채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스물넷 밥 딜런으로 끝난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역시 우디 거스리다. 아무개와 다름없던 첫 만남 때도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던 밥 딜런이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을 아는 유명인이 된 이 마지막 만남에서 그가 부른 노래는 우디 거스리의 ‘먼지투성이인 오랜 먼지-그간 함께 해서 좋았네(Dusty Old Dust—So Long, It’s Been Good to Know Yuh)’였다.
밥 딜런이 우디 거스리를 처음 만났을 때 받았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쓰여 있던 명함의 앞면에는 ‘우디—먼지폭풍에서 가장 먼지를 많이 뒤집어쓴 사람(Woody —The Dustiest of the Dustbowlers)’라고 적혀있었다. 이 노래가 곧 우디 거스리라는 의미다.
반면 마지막 만남 당시 밥 딜런은 신곡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에서 일렉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 정통 포크씬에서 배신자라는 비판을 듣던 때였다. 누군가는 변절이라 손가락질했고, 누군가는 또 마침내 자유를 얻어냈다며 축하했다. 어느 곳에서도 구속받기를 원치 않았던 밥 딜런은 그래서 그의 영웅 우디 거스리처럼 단 한 곡으로 규정될 수 없는 사람이다.
새로운 시대를 향해 떠나며 밥 딜런은 자신의 어린 시절, 그 시대를 지배했던 우상에게 ‘먼지투성이인 오랜 먼지-그간 함께 해서 좋았네(Dusty Old Dust—So Long, It’s Been Good to Know Yuh)’를 부르며 작별 인사를 갈음했다. 이보다 더 격식을 차린 인사는 찾기 어려웠을뿐더러, 이보다 그의 마음을 잘 대변하는 가사도 찾기 어렵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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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ask for the moon. We have the stars.
달을 바라지 마. 우리에겐 별이 있잖아.영화 속 밥 딜런은 결국 매 순간 진심을 담은 노랫말 때문에 여자 친구 실비 루소도 잃는다. 정작 진짜 바람을 피웠던 순간에는 어리숙한 거짓말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던 허술한 여자 친구였다. 하지만 정작 다 끝난 뒤, 바람피웠던 상대와 느꼈던 감정을 담아낸 노래를 듣는 순간 여자 친구는 곧바로 눈물을 쏟는다.
붙잡는 밥 딜런에게 여자 친구는 “달을 바라지 마. 우리에겐 별이 있잖아.(Don‘t ask for the moon. We have the stars.)”라고 답한다. 둘이 처음 데이트 했던 날 봤던 영화 ‘나우, 보이저(Now, Voyager)’에서 나왔던 대사다. 당시 영화 속 주인공이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며 여자 친구는 ‘자신을 찾았다’고 하지만 밥 딜런은 ‘찾은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된 것뿐’이라고 반박한다. 여자 친구는 ‘다른 무언가’ 앞에 ‘더 나은(better)’을 붙이지만, 밥 딜런은 다시 ‘더 나은’을 뺀 ‘다른 무언가’라고 강조한다.
영화 속 밥 딜런은 그렇게 자신의 여정에서 만난 이들과 처음과 끝, 다시 처음을 맞는다. 그리고 그건,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다른 무언가’가 되는 일일 뿐이다. 꼭 ‘더 나은’이어야만 하는 지는 그에겐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운명의 장난인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시상식에는 ‘선약이 있다’며 불참했던 밥 딜런이 노벨위원회에 보낸 수락 연설문에도 ‘달’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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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