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 김성수 선생의 70주기 추모식이 18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고인의 유택 앞에서 거행된 가운데 추모객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남양주=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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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고려대, 중앙중고교를 세우고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70주기 추모식이 18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고인의 유택 앞에서 거행됐다.
추모식에는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회장 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을 비롯한 유족과 이진강 인촌기념회 이사장, 김동원 고려대 총장 등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추모 묵념에 이어 고인 약력 보고, 추모사, 고인의 육성 듣기, 분향 및 헌화의 순서로 치러졌다.
최맹호 동우회장은 약력 보고에서 “인촌 선생은 독립을 위해 민족교육, 민족산업, 민족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민의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제도의 확립을 평생의 과업으로 추진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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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국 언론사를 연구해 온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추모사에서 “인촌 선생은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었고 현대사에 발자취를 남긴 애국의 거목으로, 언론과 교육기관을 동시에 운영한 유일한 지도자”라며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수행한 선생의 애국애족이 더욱 그리워진다”고 추모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 70주기 추모식이 18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고인의 유택 앞에서 거행되고 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 이진강 인촌기념회 이사장,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등 각계 추모객 200여 명이 참석했다. 남양주=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지난해 연극배우 최초로 인촌상을 받은 박정자 배우는 “선생은 나라의 기틀을 잡으신 분”이라고 했고, 2022년 수상자인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젊을 때부터 여러 은사님들로부터 인촌 선생의 큰 뜻과 포용력에 대해 들어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왔다”고 했다. 2023년 인촌상을 수상한 김종규 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국내에서 일제의 핍박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겠는가”라며 “그런 가운데서도 교육과 언론,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선생의 헌신을 높이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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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기틀 다져 대한민국 건국 앞장서”
인촌 선생 70주기 추모사
이진강 인촌기념회 이사장
동아일보를 창간함으로써 나라의 힘을 키워나갈 동력을 굳건히 하셨고, 민주주의 기틀을 다져서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 앞장서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제시하고 스스로 개척하셨습니다. 이는 선생의 소명 의식이 빛을 발휘한 덕분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선생의 젊은 시절 행적을 좇아가면서 다시 깨닫게 된 선생의 용기와 혜안에서 저희의 왜소함을 느꼈습니다. 중앙학교, 보성전문을 인수하고 동아일보를 창간하시며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이를 지켜내신 인내와 뚝심 앞에서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존경의 마음이 가득 찼습니다.
인촌 선생에 대해 배우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제일 큰 선생의 덕목은 아래와 같다고 감히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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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강조하고 실천하려고 하셨던 건 ‘통합의 리더십’입니다. 민족의 스승이셨고, 국가의 큰어른이셨던 선생의 명복을 빌며 삼가 추모의 글을 올립니다.
“독립 위해 민족의 역량 강조했던 선각자”
인촌 선생 70주기 추모사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선생의 70주기를 맞아 불멸의 업적과 공선사후 정신을 돌이켜 보면서 선생의 업적과 애국애족 정신이 더욱 그리워짐을 느낍니다. 선생은 국내에서 문화적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주역이셨습니다.
동아일보와 보성전문, 중앙중학은 민족 진영 인사들의 활동 무대이자 은신처였습니다. 민족 사학의 기틀을 다지고 오늘날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고려대라는 학문의 전당을 육성하였습니다. 1920년 창간한 동아일보는 총독부의 탄압을 견디면서 삭제, 압수, 정간, 언론인의 투옥 등 사법 처분의 가시밭길을 헤쳐 왔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운 사건은 언론의 가장 상징적인 항일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업가로도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1917년 경성직유주식회사를 인수해 2년 뒤 경성방직주식회사로 명칭을 바꾸면서 민족기업 육성에 기여하셨습니다. 1923년 물산장려운동도 선생의 참여로 추진되었던 캠페인이었습니다.
선생은 교육과 문화운동이라는 장기적인 사업을 추진하여 독립을 쟁취하고 독립 이후의 국가 건설에 대비하겠다는 현실적인 방안을 택했습니다. 민족 정신을 함양하고 실력을 기르는 일은 민족의 먼 장래를 기약하는 실질적 방책이었습니다.
남양주=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남양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