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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눈 속을 노닐며, 자주 매화 꽂고 그 향기에 취했었는데.
매화 꽃잎 손으로 산산이 부수는 심란한 마음, 옷깃에는 말간 눈물만 그득.
올핸 바다와 하늘의 끝자락에서 성긴 귀밑머리 두 가닥이 어느새 희끗희끗.
저물녘 몰아치는 바람세 보아하니, 분명 매화 구경은 어그러질 것만 같아.
(年年雪裏, 常插梅花醉. 挼盡梅花無好意, 贏得滿衣清淚.
今年海角天涯, 蕭蕭兩鬢生華. 看取晚來風勢, 故應難看梅花.)
―‘청평악(淸平樂)’ 이청조(李淸照·1081∼1141?)
삶의 부침(浮沈)에 따라 매화를 대하는 시인의 심경이 변하고 있다. 눈 속에서 매화향에 취해 노닐었던 젊은 날의 추억.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무슨 연유에서인지 매화를 봐도 도무지 흥이 돋지 않고 손으로 꽃잎 비비며 눈물만 지었던 한 시절. 그리고 지금, ‘성긴 귀밑머리 두 가닥이 어느새 희끗희끗’해진 시인은 홀로 먼 땅에 떨어진 처지에서 새삼 매화 구경에 마음 부푼다. 지난날의 일락(逸樂)을 반추하면서 스스로 위안거리를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나 오래도록 갈급(渴急)해 왔을 이 기대는 물거품이 될 듯하다. 저물녘 몰아치는 세찬 바람세에 시인의 안타까움이 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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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