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구멍이 아닌 도넛을 보라 ‘컬트 거장’ 데이비드 린치 화두… 불안-공포에 지배되는 인간들 통제 밖 외부 집착해선 못 벗어나… ‘도넛’은 통제 가능한 내면 상징 중요한 것 집중하는 삶 살고 있나
왼쪽 사진부터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초기작 ‘이레이저 헤드’(1977년) 포스터와 ‘멀홀랜드 드라이브’(1999년) 포스터. 사진 출처 데이비드 린치 X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린치가 2006년에 펴낸 ‘큰 물고기 잡기(Catching the big fish)’란 책에 해당 문장이 나온다. “구멍이 아니라 도넛에 신경 쓰라는 표현이 있다. 당신이 도넛에 신경 쓰며 일을 한다면 그것이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당신은 당신 외부에 있는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은 내면으로 들어가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 이어서 린치는 명상을 통해 세상의 사건들을 겪는 방식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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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보라”고 보도되었던 부분은 단순한 동사 ‘보다’가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다’ 혹은 ‘신경을 쓰다’와 같은 뜻을 가진 ‘Keep one’s eye on (the doughnut)’이라는 표현이었다. 즉, “구멍이 아닌 도넛을 보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무엇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인 셈이다.
사후에 맞은 79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1월 19일 린치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기리며 올린 그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데이비드 린치 X
그렇다면 “구멍이 아닌 도넛을 보라”를 말을 통해 린치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세계는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내면에 신경 쓰라는 것이었다. 내면에 대한 관심에 걸맞게 린치는 명상을 꾸준히 실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것이 곧 세계를 무시하고 저버리라는 취지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되어, 결국 세상의 사건들을 겪는 방식이 훨씬 나아질 수 있다고 린치는 믿었다.
실로 우리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세상을 좀 잘 겪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세상에는 어두움이 많아서 인간은 자칫 공포에 잠식될 수 있다. 그 공포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분노를 낳게 마련이라고 린치는 믿었다. 어떤 공포가 가장 무시무시한가? 미국 작가 데이비드 브레스킨과의 인터뷰에서 린치는 “최악의 공포는 우리 모두가 너무도 통제 불능이라는 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통제 불가능한 외부에 집착하지 말고 통제 가능한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인간은 공포로부터 상당히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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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는 결국 성공했지만,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하는 실패는 감수할 수 있으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다가 하는 실패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한 뒤,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데이비드 린치. 그는 기괴한 변태보다는 헛된 일에 관심을 끊고 자기 인생을 잘 돌보고자 했던 로마 시대 스토아 철학자들을 닮았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