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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지현]신뢰가 무너지니, 허울뿐인 ‘시스템 공천’

입력 | 2024-01-22 23:42:00

김지현 정치부 차장


“경선 결과가 끝내 못 미더우면? 그땐 검찰로 들고 가야지.”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총선 예비후보 검증 결과를 두고 뒤숭숭한 가운데 한 현역 의원은 이같이 말했다. 자질이 의심되는 수준의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어 최악의 결과가 나올 땐 경선 불복도 검토할 수 있다는 거다. 반쯤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이미 당에 대한 불신은 상당해 보였다. 그는 “이번 선거를 준비하면서 민주당이 이런 수준밖에 안 되는 당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낙연도, ‘원칙과 상식’도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지니 탈당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실제 요즘 민주당에선 그동안 자기들끼리는 자랑처럼 여겨온 ‘시스템 공천’의 공든 탑이 도처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민주당이 2016년 도입한 시스템 공천은 과거 ‘밀실 공천’과 달리 객관화된 수치와 당헌당규 등에 따라 후보를 선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유독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잡음이 많다.

일례로 지난 총선 때 공천 결과에 불복해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 아들 문석균 씨는 이번에 ‘적격’ 후보로 판정받았다. 반면 탈당하거나 무소속 출마한 적 없는 김윤식 전 시흥시장은 ‘경선 불복’을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당내에선 김 전 시장이 ‘친명(친이재명)’ 조정식 사무총장 지역구에 도전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이중잣대’ ‘편파판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재판 중인 피고인들이 줄줄이 ‘적격’ 판정을 받은 것도 논란이다. 주 2∼3회 법정에 나가는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은 황운하 의원,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노웅래 의원 등이 모두 민주당 기준에선 ‘적격’한 후보들이라 한다. 이는 민주당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 하급심에서 유죄가 나더라도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당규(공천룰)를 바꿔둔 덕분이다. 사실상의 ‘이재명 맞춤형’ 공천룰이다. 아무리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총선 후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는다면 역대급 규모의 재·보궐선거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성추문 의혹을 일으킨 ‘친명’ 인사들에 대해서도 유독 관대했다. 당이 차마 ‘부적격’ 딱지를 붙이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이 논란의 친명 인사들은 마치 당을 위해 자신들이 희생하는 모양새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동료 정치인의 여성 비서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2차 가해 논란까지 일으켰던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당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했고, 과거 성추문 전력이 논란이 된 강위원 당 대표 특보도 “당이 결정을 못 하는 상황이 부담된다”고 검증 신청을 철회했다. 둘 다 피해자가 아닌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불출마한다는 거다. 당내에선 “성폭력 범죄는 예외 없는 부적격에 해당하는데도 당이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어느 시스템이든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기본 전제는 구성원의 신뢰다. 아무리 잘 구축된 시스템도 내부인들이 믿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 논란이 되는 결정들의 배경엔 공교롭게도 대부분 ‘친명’이 엮여 있다. 이 대표와 지도부가 아무리 ‘시스템 공천’ 노래를 불러도, 이미 신뢰를 잃은 당원들에겐 ‘시스템 학살’로 들리는 배경이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