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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 50cm 높아지면 ‘제2도시’ 사라져”… 기후위기에 떠는 이집트[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3-12-06 23:39:00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해변에 중장비를 동원해 새로운 제방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인 모습. 알렉산드리아=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지중해에 면한 이집트 제2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찾았다. 해변 곳곳에 대형 방파제와 콘크리트블록 등이 가득했다. 곳곳에서 대형 중장비를 동원해 새로운 제방을 쌓는 작업도 한창이었다.

이집트 관개·수자원부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의 해수면은 1993년까지 매년 평균 1.8mm씩 상승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에는 연간 3.2mm씩 높아지는 등 해수면 상승 속도가 상당히 빨라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해수면 상승에 매우 취약한 지역으로 꼽힌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나고 자랐으며 10년 넘게 해변 카페를 운영해 왔다는 모셴 마헤르 씨(32)는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 해변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피부로 느끼는 해수면 침식 위험이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 카페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아마 자식들은 새로운 해변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생존 위협받는 주민들
인구 610만 명의 알렉산드리아는 수도 카이로에서 북서쪽으로 약 250km 떨어져 있다. 기원전 4세기 세계를 제패한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 만들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관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아예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이후 2000년 넘게 수많은 외국 군대의 침략, 화재, 지진 등에서도 살아남았지만 21세기 들어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라는 새 위협에 직면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 해수면은 최대 68cm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세계 해수면이 50cm만 상승해도 알렉산드리아 일대의 해변 및 저지대는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유엔은 전망했다.

방파제에서 만난 현지 어부, 낚시꾼들도 이에 관한 질문을 받자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20년 이상 물고기잡이를 했다는 마흐무드 씨는 “당장은 나라에서 방파제를 쌓아 임시 대처를 하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해변에서 공예품을 팔던 남성도 “매년 파도가 강해지고 있다. 바람이나 파도가 조금이라도 심한 날에는 비교적 지대가 높은 이곳에도 바닷물이 가득 차 판매용 천막을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방파제 공사용 레미콘 차량, 굴착기 등이 더 많이 돌아다니느라 먼지가 자욱해 장사도 어렵다”고 불만을 표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폭우와 강풍이 몰아쳐 일대 주민이 숨지고 가옥이 붕괴되는 일도 잦았다. 해변 인근 10층짜리 노후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가게 점원 압델 씨는 “정부는 위험 지역을 떠나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이주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돈을 모으면 안전한 새 건물이 있는 곳으로 이사 가고 싶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는 취약계층에게 더 위협적이다. 이집트 내 고질적인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압델 씨의 말처럼 부유층은 침식 우려가 적은 곳으로 이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떠나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다. 특히 빈곤층 비율이 높고 노후 주택이 많은 알렉산드리아 서쪽의 ‘엘막스’ 일대는 해수면 상승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곳으로 꼽힌다.

상당수 엘막스 주민은 현재 강 위의 배를 임시주택 삼아 생활한다. 기존에 살던 집은 언제 침수되거나 무너질지 모르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돈 또한 없으니 강 위로 몰려난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엘막스 주민이 처한 곤경은 해수면 상승 위기에 대한 조기 경고 신호”라며 향후 대규모 범람으로 최소 수천 명이 이 일대에서 이주를 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명 기후 과학자 무함마드 엘레이 또한 “정부가 10년 안에 엘막스 주민을 모두 이주시켜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해변 곳곳에는 약 2, 3m의 대형 방파제용 구조물도 가득했다. 최근 알렉산드리아 일대의 해수면 상승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 지역 주민의 상당수가 생존 위기에 처했다. 알렉산드리아=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 일대에는 해변과 인접한 마리우트 호수도 있다. 이 호수 주변은 해수면보다도 최대 3m 낮은 저지대다. 바닷물이 방파제를 넘으면 가장 먼저 침수될 수밖에 없다. 인근 공장에서 수십 년간 이 호수에 폐수를 몰래 버린 탓에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알렉산드리아 등 나일강 하류 경작지는 이집트 최대 곡창지대로 꼽힌다. 해수면 상승 및 역류로 토양 염류화가 가속화하면서 이 일대 농작물 생산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농업 전문 비영리 국제 프로젝트 ‘SALAD’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한 나일강 하류 경작지에서는 염류 영향을 받은 토양의 비율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연구 또한 토양 염류화로 갈수록 이 일대의 작황이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의 염분 농도 증가는 이미 상당한 식량난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서민층에게 더 큰 피해를 줄 것이 확실시된다. 세계농업시장정보시스템(AMIS)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이집트의 식량 자급도는 49.7%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밀 등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주식인 빵값이 급등해 민심 이반이 상당하다.

기후변화는 국가 간 양극화도 부추기고 있다. 선진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은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0억 달러(약 3조9000억 원)의 구제금융까지 받은 이집트에선 기후변화 대처를 논하는 것조차 일종의 ‘사치’로 여겨질 수 있다.



COP28도 해안도시 미래 논의
해수면 상승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국제 환경 전문 비영리단체 ‘클라이밋센트럴’은 이번 회의에서 전 세계 196개 도시가 해수면 상승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를 애니메이션 모델로 발표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명 모스크 ‘아부알압바스’의 모습. 최근 국제 환경 전문 비영리단체 ‘클라이밋센트럴’은 지구 기온이 3도 오르면 이 모스크의 하단부와 일대 거리가 모두 물에 잠길 것이라고 경고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집트 관광청 제공 

이 단체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지금보다 3도 오르면 알렉산드리아의 유명 모스크인 ‘아부알압바스’를 비롯해 두바이의 고층빌딩 부르즈칼리파 등의 하층부는 모두 물에 잠긴다. 또 일본 후쿠오카, 영국 글래스고, 쿠바 아바나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도심 침수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다.

클라이밋센트럴의 수석과학자 겸 최고경영자(CEO) 벤저민 스트라우스는 3일 미국 CNN 인터뷰에서 “COP28에서 내려진 결정들은 전 세계 해안도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각국 지도자가 속히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들 도시와 문화유산의 생존 여부는 얼마나 빨리 탄소 오염을 줄여 온난화 속도를 늦추느냐에 달렸다”고 거듭 강조했다.

COP28에서는 기후변화 피해를 입은 저개발국을 위한 ‘기후 손실·피해 기금’도 출범시키기로 했다. 산업화를 주도한 선진국이 초래한 기후위기의 피해가 개발도상국에 집중된 만큼 주요 선진국의 관련 기부금을 저개발국의 기후위기 해소에 쓰자는 취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