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판 GTX’로 런던 외곽 활력… 메가시티 핵심은 교통[이슈 따라잡기]

내년 개통 GTX 파급효과는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메가시티(megacity)’ 논의가 부활했다. 한때 적극적으로 추진됐던 ‘부울경 메가시티’가 지난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무산된 지 1년여 만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를 서울과 합치는 ‘광역서울도’ 논쟁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김포시 서울 편입’ 제안으로 촉발된 ‘서울 메가시티’ 이슈가 서울 인접 생활권 도시들로 번지더니 급기야 지방 대도시권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부산은 부산·울산·경남 대신 ‘메가 부산’을 다시 들고나왔고 충청, 대구·경북, 호남 메가시티까지 거론되면서 메가시티라는 유령이 전국을 배회하고 있다.

메가시티란 일반적으로 주변 생활권까지 포함해서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를 말한다. 2016년에 1000만 명이 무너진 서울을 여전히 메가시티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지어 2600만 명의 수도권 전체를 하나의 메가시티로 봐서 도쿄, 상하이, 자카르타, 델리에 이어 서울이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메가시티라는 세계적인 통계도 빈번하다. 인구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수도권과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지방 대도시권의 메가시티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다.

9월 21일 시운전을 하고 있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열차. GTX-A 노선은 내년 개통 예정이다. 동아일보DB 

그러나 메가시티의 공통 전제 조건은 핵심 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고 효율적인 광역교통망을 건설해서 주변 도시들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것이다. 행정구역만 서울, 부산으로 바꾼다고 메가시티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 외곽 도농복합도시도 고속광역교통망을 이용해서 서울, 경기 어디라도 1시간 이내로 통행이 가능해지면 자동적으로 메가시티 서울이 되는 이치다. 내가 메가시티 시민인지 아닌지는 행정구역 이름이 아니라 고속광역교통 접근성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내년 개통되는 GTX(Great Train eXpress)는 작금의 메가시티 논쟁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엘리자베스 라인의 고속열차. 평균속도도 서울에서 제일 빠른 9호선 급행(시속 46.8km)보다 2배 이상 빨라 런던 외곽에서 도심 패링던역까지 30분 내외로 이동 가능하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GTX는 영국 런던대도시권(Greater London)의 크로스레일(Crossrail)과 프랑스 파리대도시권(Gran Paris)의 RER(Réseau Express Régional)을 모델로 2009년에 처음으로 제안됐다. 크로스레일과 RER 모두 광역급행철도지만 런던 도심 구간을 대심도 지하로 통과해 높은 표정속도를 자랑하는 크로스레일이 GTX와 좀 더 가깝다. 총 41개 역에 노선 전체 길이가 118km에 달하는 ‘크로스레일 1(엘리자베스 라인)’은 2009년에 착공해 2022년 5월 부분 개통 후 올해 5월 21일 완전 개통됐다. 런던 도심 구간 42km는 GTX와 같이 대심도 지하에 새롭게 건설했고 나머지 런던 외곽구간은 지상에 설치했으며 대부분은 기존 영국 철도 노선을 재사용하고 있다.

앞으로 런던대도시권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크로스레일 2와 순환선으로 계획 중인 크로스레일 3가 건설되면 메가시티 런던의 초고속 광역교통망이 완성되게 된다. 우리도 GTX-A를 시작으로 GTX-C와 GTX-B가 각각 2028년, 2030년에 개통되면 수도권이 메가시티의 진정한 면모를 상당 부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2기 GTX(D, E, F)’가 원활히 추진돼 2030년대에 완성된다면 삶의 질, 도시 경쟁력 측면에서 수도권은 명실상부 세계 제일의 메가시티로 자리 잡을 것이다.

GTX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고들 말한다. GTX의 시공간 압축 효과로 인해 자신의 직장, 교육, 의료 등에 맞춰 이루어지는 주거지 선택에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어디나 1시간 내에 갈 수 있게 되면 점차 늘어나는 여가 활동의 내용과 패턴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지난해 5월 ‘엘리자베스 라인’ 전면 개통 첫날 영국 런던 시민들이 열차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엘리자베스 라인은 런던 외곽과 중심을 연결하는 광역급행철도 ‘크로스레일’ 노선 가운데 가장 처음 개통된 구간이다. 시내와 외곽 간 통근이 쉬워지면서 집값이 훨씬 저렴한 런던 외곽에 거주하려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에 따라 대규모 주택 공급이 이뤄졌다. 런던=신화 뉴시스

개통 1년 반이 돼 가는 크로스레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미리 체감해 볼 수 있다. 교통편이 좋지 않았던 런던 외곽의 낙후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최고 시속 120∼140km로 표정속도가 서울에서 제일 빠른 9호선 급행(시속 46.8km)보다 2배 이상 빠르다 보니 런던 외곽에서 도심 한복판 패링던역까지 30분 내외로 통근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런던 관문 공항인 히스로에서도 32분이면 도착한다. 크로스레일 개통으로 교통망 개선이 되는 지역에 대규모 주택 공급이 이뤄졌다.

월급 대부분을 집세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런던 도심 직장인에게 일반 런던 지하철 요금으로 30분 내 통근이 가능한 런던은 꿈같은 현실이다. 살인적인 집값으로 악명 높은 런던에서 크로스레일이 가져온 변화는 어떤 정책보다 강력했다. 그러나 크로스레일로 인해 수혜지역 집값이 폭등한 점은 우리 정책 당국에 GTX 시대에 어떻게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지를 경고하고 있다. GTX 역세권의 고밀 복합개발을 통해 양질의 주택을 대량 공급함으로써 과도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 그리고 GTX와의 연계 교통을 강화해 GTX 수혜지역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우리가 목격한 크로스레일의 부작용을 막는 길이다.

서울 강남까지 30분이면 도달하는 GTX가 개통되면 수도권 외곽 도시들도 서울 못지않은 입지적 가치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GTX-A가 개통되면 화성 동탄에서 서울 도심까지 20분 내 도착할 수 있다. 양주의 GTX-C 덕정역에서는 강남 삼성역까지 29분이면 충분하다. 광역버스, 지하철을 이용해서 2시간씩 걸려 통근, 통학해야 했던 지역 주민들에게 이제는 비좁고 비싼 강남 아파트보다 넓고 쾌적한 우리 동네 아파트가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전 정부에서 온갖 수를 써도 하지 못한 ‘강남 집값 잡기’를 GTX가 해내는 셈이다. 크로스레일 사례에서 보듯이 외곽 도시에 사람이 모이고 도시경제가 활성화된 것은 메가시티 런던을 초고속으로 연결시킨 광역교통망이다. 동네 이름을 바꾼다고 낙후된 도시가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 바보야, 문제는 교통이야!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