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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최한나]관리자로 승진 못 하면 아웃? 조직 내 다양한 경로 마련해야

입력 | 2023-10-17 23:42:00

최한나 HBR Korea 편집장


연말이면 많은 기업이 인사를 한다. 누군가는 승진하고 누군가는 이동하며 축하 메시지와 난이 오간다. 한쪽에서 누군가는 자리를 비운다. 동기나 후배가 자기 위로 올라가면서 그 지휘를 받게 된 이들이다. ‘젋음’이 ‘유능’을 빛내주는 가치로 여겨지면서 이른바 ‘깜짝 발탁’이라는 인사가 늘었고 덩달아 이런 이들도 증가했다. 새로운 관리자가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에서 이런 관행은 일종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대체로 피라미드 구조를 가진 많은 조직에서 관리직은 제한적이다. 관리직으로의 승진이 조직 생활의 열매로 여겨지는 문화에서는 승진하지 못하면 실패했거나 밀려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리가 많지 않다는 희소성은 많은 이들이 조직 생활의 목표로 승진을 꼽도록 만든다. 세계적인 조사연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의 직원 3명 중 2명은 현재 또는 미래에 구성원을 관리하는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관리자로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직을 떠난다. 동시에 이들이 수십 년간 축적한 역량과 전문성도 사라진다. 기업에 작지 않은 손실이다. 역량 있는 인재들이 관리직에 연연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대자동차그룹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현대차는 남양연구소 인력 중 뛰어난 기술력을 입증한 직원이 관리자로의 승진 외에 전문가로서 밟아갈 수 있는 경로를 운영한다. 연구소 직원은 본인 지원이나 상사 추천을 통해 전문가 트랙을 선택할 수 있다. 이 트랙을 택하면 관리자로 승진하지 않아도 연구위원으로 대우 받으며 본인만의 전문성을 쌓아갈 수 있다.

관리자로의 승진만으로 조직 내 커리어를 제한하는 것은 조직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좋지 않다. 관리 업무에 요구되는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거나 다른 사람을 관리하고 조직을 이끄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성향이라면 관리직에 올랐을 때 스트레스가 심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가트너 조사에서 관리자 5명 중 1명은 선택할 수 있다면 현재의 직책을 맡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관리자 2명 중 1명은 업무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고통스럽다고 했다.

미국 건강보험회사 WPS헬스솔루션이 대안을 제시한다. 이 회사는 직원들이 관리직에 자원하도록 한다. 관리자 선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인데 6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관리자로서 적합한 역량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은 좀 부족하더라도 앞으로 꾸준히 개발해 나갈 의지가 있는지, 해당 직책이 본인의 커리어 목표에 부합하는지 등은 물론이고 본질적으로 내가 관리자 역할을 정말 원하는지를 다각도로 실험할 수 있는 기회다. 회사에 따르면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원 중 75%는 이 프로그램이 커리어 관리와 개발에 매우 유용했다고 답했다.

탁월한 인재들이 조직에 오래 남아 충분히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면 관리직으로의 승진 외에도 다양한 경로를 제시해 이들이 몇 개 없는 관리직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원 개인과 조직 전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최한나 HBR Korea 편집장 h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