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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대책이 미팅 주선? 서울시와 청년들의 동상이몽[메트로 돋보기]

입력 | 2023-06-22 15:23:00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자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입니다. 서울시청은 그래서 ‘작은 정부’라 불리는데요, 올해 예산만 47조2052억 원을 쓰고 있답니다. 25개 구청도 시민 피부와 맞닿는 정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또는 서울을 여행하면서 ‘이런 건 왜 있어야 할까’ ‘시청, 구청이 좀 더 잘할 수 없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본 적이 있을까요? 동아일보가 그런 의문을 풀어드리는 ‘메트로 돋보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주 한 번씩 사회부 서울시청팀 기자들이 서울에 관한 모든 물음표를 돋보기로 확대해보겠습니다.“이번 추경안에 ‘청년만남, 서울팅’이 포함됐는데 언론에서도 많이 화제가 됐다. 사업 내용, 추진 배경 등에 대해 직접 설명해달라.” (박강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그렇지 않아도 비판 기사도 있어서 한번 들여다봤다. 깊이 들여다보니까 저는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13일 서울시의회 제319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오간 대화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가 저출생 대책 중 하나로 추진하던 만남 주선 사업 ‘청년만남, 서울팅’(서울팅)에 대한 질문을 받자 “깊이 들여다보니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인 15일, 서울시는 돌연 ‘서울팅 전면 재검토’로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서울팅이 저출생 문제를 실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다시 논의하고 사업 추진을 재검토하겠다는 겁니다. 서울팅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서울시판 나는솔로… 청년들 ‘싸늘’ 
‘서울팅’은 서울시가 저출생 대책으로 추진하던 청춘 만남 주선 프로그램입니다. ‘서울시판 나는 솔로’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가 됐습니다. 청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사업 추진 당시 서울시는 “비대면 문화의 일상화로 만남의 기회가 부족한 결혼 적령기 청년에게 만남과 소통의 장을 제공하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시는 올해 6차례에 걸쳐 250여 명을 모집하겠다며 추가경정예산안에 사업비 8000만 원을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사전 의견 조사도 진행했습니다. 지난달 서울청년포털 청년몽땅정보통에서 진행된 설문을 보면 서울팅 프로그램으로 편의점 요리대회, 전통시장 상생 맛집 투어, 고궁 나들이, 바리스타 클래스 등을 하면서 ‘일대일 스피드 데이팅’ ‘썸매칭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지난달 서울청년포털 청년몽땅정보통에서 진행된 ‘서울팅’ 설문의 일부. 홈페이지 캡쳐.

그러나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사업 계획이 알려지자 온라인에는 ‘국가가 중매를 서다니’ ‘2023년판 솔로대첩될 듯’ ‘저게 어떻게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냐’ 등의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관(官)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특히 본질을 빗나갔다는 비판이 컸습니다. 높은 집값, 육아하기 힘든 환경, 여성의 경력 단절 등 저출생의 주원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만남의 기회 제공’이라는 엉뚱한 포인트를 잡았다는 겁니다. 대학원생 이모 씨(27)는 “서울시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모르는 것 같다”며 “출생률이 낮은 건 단순히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씨는 “결혼과 출산에 앞서 의식주 문제부터 해결이 돼야 하는데, 서울의 높은 집값과 생활물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청년 실업에나 더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서울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직장인 정모 씨(30)는 “고령화가 심한 지방의 경우 실제로 젊은 남녀의 만남 자체가 어렵기에 관이 주도하는 만남이 의미 있을 수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서울에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정말 단순히 소개팅을 못 해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지역적 특성과 인구 배치 등을 고려하지 못한 탁상공론”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지난해 대구 달서구에서 마련한 커플 매칭 프로그램  ‘너랑나랑 3삼5오 데이트’에서 목재 데이트를 하는 참가자들(위). 지난해 경북 구미시의 미혼남녀 매칭 프로그램 ‘두근두근 ~ing’ 에서 와인파티가 열리고 있다(아래). 달서구·구미시 제공

실제로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 1위는 결혼 자금 부족(30.8%), 2위는 직업이 없거나 고용상태 불안정(14.4%)이었습니다. 단순히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가 아닌 경제적 이유가 크다는 겁니다. 결혼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13.4%)라는 답변이 3위를 차지했지만, 이 역시 단순히 만남의 기회가 적어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뒤를 따른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낌(12.3%)이라는 답변도 결혼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 변화를 보여줍니다.

재직증명서나 혼인관계증명서 등 서류 확인으로 민간사업과 차별을 뒀다는 설명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었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13일 시정질문에서 “세상이 험하다 보니 미혼 여성들은 (소개팅 전) 잘 어울리는 이성일지 고민하기 전에 범죄자를 만날까 봐 불안에 떤다고 한다”며 “(서울팅은) 적어도 극단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민간에서 할 일을 왜 공공에서 하느냐는 게 비판의 논점인데, 민간에만 맡겨서는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서울시가 개입함으로써 일정 부분 해결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든다”고 했습니다.

직장인 이모 씨(26)는 “서울시가 말하는 재직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등으로 범죄 가능성을 어떻게 판단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습니다.

박강산 서울시의원은 “과거 정부에서 만든 ‘가임기 여성지도’의 시즌2를 보는 느낌”이라며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틀 만에 재검토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본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 “서울팅, 청년 입장선 낭만적 대책”
서울시의 입장도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닙니다. 합계출산율 0.59명, 전국 광역시도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서울을 보면 ‘오죽 저런 정책까지 나왔을까’ 싶기도 합니다. 초저출생 극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시의 의지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서울시가 청년들의 냉각된 여론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와 청년세대의 ‘동상이몽’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오 시장은 13일 시정질문에서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문에서 두 번째로 많은 20% 정도가 ‘사람 만날 기회가 없어서’라고 답변했다”고 했습니다.


13일 열린 서울시의회 제319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강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유튜브 캡쳐.

이에 대해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만날 기회조차 없다’라는 말에 대해 청년들과 서울시가 이해한 맥락의 차이가 있을 것”라고 했습니다. 조 교수는 “청년들이 말하는 만남조차 힘들다는 것은 ‘나의 상황 자체가 누구를 만날 수 있을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뜻인데, 서울시에서는 글자 그대로 ‘그럼 우리가 만나게 해줄게’라고 나온 것”이라며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맥락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단순히 미팅 기회를 줘서 결혼을 장려하겠다는 건 근시안적인 대책”이라며 “주거문제, 고용 불안정 등 구조적인 문제로 결혼과 출산에 좌절을 겪는 젊은층에게 단순히 미팅 기회를 준다는 건 어떻게 보면 낭만적인 대책처럼 여겨졌을 것”이라고 청년들의 반발을 진단했습니다. 서울팅이 젊은 층의 좌절감과 분노를 가볍게 처리하는 것 같은 인식을 줬다는 겁니다.

16일 서울시는 논평을 통해 “나무만 보지 말고 서울시의 저출생 대책이라는 큰 숲을 봐달라”고 했습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저출생 사업이 서울팅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서울팅을 둘러싼 서울시와 청년세대 간의 ‘동상이몽’을 보면 진짜 숲을 봐야 할 건 어느 쪽인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