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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는 국민연금 관리… 더 불안해진 국민 노후

입력 | 2023-03-11 13:12:00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뉴스1]

“지난해 8.22% 손실이면 선방한 것 아니냐.”

“그래도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대폭 당겨진 것은 문제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최근 국민연금 수익률을 두고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79조6000억 원 운용 손실을 기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금 고갈 위기감이 커진 탓이다(그래프 참조). 7월부터 국민연금 납부액이 6.7% 늘어나는 사실도 직장인들의 분노를 더했다.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는 “내가 내는 국민연금은 사실상 세금 아니냐”는 자조도 나오는 상황이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턱없이 미미한 한국에서 노후에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국민연금이 과연 윤석열 정부에서 성공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국민연금 적립금 다시 800조 원대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3월 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연금의 체질 개선을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자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급격한 금리인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문제 등으로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기록한 수익률(-8.22%)은 제도가 도입된 1988년 이후 가장 낮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0.18%), 미·중 무역분쟁이 벌어진 2018년(-0.92%)과 비교해도 손실 폭이 크다. 이로써 기금 적립금도 890조50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수익률이 하락한 데는 세계적인 증시 침체의 영향이 컸다. 국내 주식(-22.76%)과 해외 주식(-12.34%)은 모두 두 자릿수 하락률을 보이며 전체 수익률 하락을 이끌었다(표 참조). 벤치마크(BM) 대비 국내 주식은 0.47%p, 해외 주식은 0.15%p 하락해 시장 대비 선방했으나 증시 하락의 소나기를 피하지는 못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투자 비중을 줄이고 싶어도 주식시장에 끼치는 파장 때문에 섣불리 포지션을 축소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투자한 채권 역시 국내외 모두 5%대 전후로 하락하며 손실을 더했다. 대체투자만 8.94% 상승을 기록해 수익을 냈다. 대체투자는 주식과 채권을 제외한 나머지 투자를 총칭한다. 부동산과 사모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 수익률 상대적으로 양호”


정부는 국민연금이 어려운 상황에서 선전했다고 자평했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해외 주요 연기금의 운용수익률도 글로벌 증시 급락 등의 영향으로 크게 하락했고, 국민연금의 성과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라는 입장이다. 해외 주요 연기금 다수가 지난해 결산을 발표하지 않아 국민연금의 ‘선방 정도’를 판별하는 데 제약이 있다. 다만 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일본(-4.8%)과 캐나다(-5.0%) 연기금에 비해서는 수익률이 낮지만 노르웨이(-14.1%), 네덜란드(-17.6%) 연기금보다는 높았다. 국민연금은 일본 GPIF, 노르웨이 GPFG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연기금이다. 통상적으로 기금 규모가 많을수록 투자에 제약이 커 수익률을 높이기 어렵다.

어려운 환경에서 선방했다지만 대규모 적자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기는 ‘또’ 앞당겨질 전망이다. 복지부는 1월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결과’를 발표하면서 기금 소진 시기가 2055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저출산 심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5년 전 실시한 4차 추계 대비 고갈 시점이 2년 앞당겨진 것이다. 복지부는 국민연금이 연평균 4.5% 기금투자수익률을 낼 것을 가정하고 고갈 시기를 계산했다. 향후 국민연금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고갈 시점은 2055년보다 더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올해 입사한 직장인은 정년퇴직을 하기 전 기금 소진을 목격하게 된다. 문제는 연금개혁이 흐지부지한 상태라는 점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개혁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자문위)는 당초 1월 연금개혁안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여부, 소득대체율 조정 등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한 발 물러난 것이다. 3월 2일 뒤늦게 경과보고서를 발표했지만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방안이 빠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에 총선을 치르는 만큼 정치권은 향후 국민연금 개혁 같은 민감한 사안을 피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실시한 ‘국민연금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4%가 현행 소득대체율(40%)이 ‘높거나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보험료율(9%) 인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도 9.6%에 그쳤다. 국민이 가장 선호한 해결책은 기금운용수익률 제고(32.4%)였다. 연금개혁을 공약했지만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ESG 대신 수익률 강조해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3월 7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제1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상황이 긴박한 만큼 기금운용수익률이라도 높여 기금 소진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익률을 연 1%p 높일 경우 연금 고갈 시점은 6년 늦춰진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퇴직연금이 오직 수익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제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기금운용에서 모호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현행 방식이 아닌, 목표 수익률을 설정하고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그간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증시가 활황이던 코로나19 국면에도 주요 연기금에 비해 수익률이 낮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발간한 ‘2021회계연도 총수입 결산 분석’에서 “국민연금의 2021년 운용수익률은 주요 선진국의 연기금과 비교했을 때 가장 낮은 수익률”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국민연금 수익률은 10.86%로 노르웨이(14.51%), 캐나다(13.66%), 미국(13.28%), 일본(12.62%), 네덜란드(11.19%) 등 비교군에 비해 낮았다. 국민연금연구원과 미국 연기금·국부펀드 분석기관 글로벌 SWF 등을 종합하면 국민연금의 최근 10년간 운용수익률은 4.99%에 그쳐 채권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일본 공적연금(GPIF·5.30%)보다 수익률이 낮았다.

수익률을 높이려면 기금운용역의 처우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통해 우수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운용 규모가 큰 데다 이직할 때 근무 경력이 도움이 돼 커리어 관리 차원에서 많이들 간다”면서도 “이를 제외한 이점은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현장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다는 반응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3월 7일 제1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운용 인력의 보수 수준을 시장 상황에 맞게 합리화하고 금융시장 및 운용사와 원활한 정보 교류, 네트워크 구축 등 기금운용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양준모 교수는 더 나아가 “우수한 인재들이 시장 및 전문가들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기금운용본부만이라도 서울에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운용역이 시장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 인사에 여론 싸늘


‘낙하산 인사’ 논란 역시 국민연금이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다. 복지부는 3월 7일 국민연금 전문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의결권 행사를 전담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 위원 9명 중 3명을 전문가 단체로부터 추천받게 한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한국증권학회, 한국경영학회, 금융투자협회, 한국연금학회 등 금융·투자계에서 추천한 인사를 적극 수용해 국민연금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수책위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가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행동원칙을 규정한 자율규범) 이행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상장회사에 대한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에 관한 결정을 내린다. 사실상 주주총회의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만 검사 출신인 한석훈 변호사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무위원으로 선임되면서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한 변호사는 서울동부지검 부부장,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을 지낸 법조인이다. 책과 논문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무효”라고 주장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복지부는 “한 변호사는 사용자 단체의 추천을 받은 전문가로 법령상 자격 요건을 갖췄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금융감독원장,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교육부 정책보좌관, 서울대병원 감사에 이어 국민연금에도 검사 출신 인사가 임명되자 “전문성보다 ‘검사 경력’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향후 수탁위에 참여해 의결권 행사 등에 대해 주요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 설립을 통해 정치권 입김 논란에 대응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이 경우 기금운용 전문성이 신장돼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금운용위원회의 지배구조를 민간 전문가 집단으로 재편하는 것을 가정한다면, 하부 집행조직 역시 이에 상응하는 공사 형태의 독립기구로 재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국민연금의 전문 운용기관으로 출범한 CPPIB의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CPPIB의 10년 평균(2009~2018) 수익률은 11.3%로 국민연금(5.5%)의 2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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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80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