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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케어도 ‘템빨’” 20년차 선후배의 돌봄용품 창업 스토리[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3-02-26 07:00:00


50대쯤 되면 지인들 모임에서 부모님 건강이 화제가 되는 일이 부쩍 늘어난다. 세월에 떠밀려 고령이 된 부모 세대가 어느 틈에 보살핌의 대상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부모님은 요즘 어떠셔? 우리 아버지는 이번에….”

왕년의 직장 선후배였던 이준호 그레이스케일 대표(53)와 박진호 이사(51)가 5년 만에 만나 의기투합한 계기도 이런 대화였다.

2021년 봄쯤 우연히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 게 지금의 회사 창업으로 이어졌다.

회사 설립 취지는 돌봄이 필요한 부모님과 돌보는 자녀들이 그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

지난해 3월 경기 부천시에 복지용구 매장 ‘그레이몰’을 열고 4월 온라인 사이트(www.greymall.co.kr)도 오픈했다. 16일 매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16일  경기 부천시 그레이몰 오프라인 매장에서 재고를 점검 중인 이준호 대표(오른쪽)와 박진호 이사. 부천=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발단은 3년 전, 박 이사의 아버지(84)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일이다. 골든타임 내에 조치를 했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아버지는 다리 한쪽을 끄는 듯한 걸음걸이를 보였고 말도 어눌해졌다. 얼마 뒤 심장 스텐트 시술도 받았다.

불행은 혼자 찾아오지 않는다던가. 비슷한 시기 어머니(83)가 치매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보행이 불안정해 집안에서도 자꾸 넘어지고 다치셔서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려워졌다.

기러기아빠로 혼자 지내던 박 이사는 결국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두 분만으로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계신 집은 지뢰밭같아요. 전깃줄 하나, 양탄자 끝자락에 걸려 넘어져도 큰 부상으로 이어집니다.”

달라진 삶에서 부모님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았지만,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겠고 물건들도 시원찮았다.

예컨대 지팡이. 까다로울 정도로 멋쟁이였던 아버지는 지팡이가 필요했지만 시판되는 지팡이를 마뜩지 않아 했다. 과거 완구수입회사를 운영했던 박 이사는 자신이 지팡이를 만들어볼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반 지팡이를 알아보다가 복지용구 지팡이를 알게 됐고, 복지용구 전반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로 확장돼 갔다. 제도를 알고 시장을 알수록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의 세상이었다.


노인용 보행기를 점검 중인 이준호 대표와 박진호 이사. 30대 초에 잠시 함께 일했던 두 사람은 50대에 함께 창업하며 제2의 인생 첫발을 내디뎠다. 부천=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렇게 살면 안될 것같은데…”
그 무렵 직장 선배였던 이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삼성물산, 현대홈쇼핑, 오케이몰 등에서 일해온 유통과 이커머스 전문가다.

이준호 대표가 시니어용 지팡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가볍고 손잡이 부분이 손의 윤곽을 잘 받쳐줘 고령자가 적당히 의존하며 사용하기 좋다고 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3년가량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이 대표도 마침 인생 2막을 고민하던 차였다.

“몇 년 전 가까운 선배가 나이 50에 회사에서 쓰러져 불귀의 객이 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이 대표)

두 사람은 또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민과 너무도 준비가 안 된 현실을 공유했다.

“부모님은 늙어가고, 편찮아지시고, 많은 게 필요해질 텐데 자녀들은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가면서부터 더듬고 헤매는 간병생활이 시작되겠구나….”(박 이사)

다음 날부터 이 대표는 ‘숫자 검토’에 들어갔다. 노인인구와 제품들의 시장 규모, 관련 제도를 조사했다.

“이거 할 만하겠다. 구체화해 보자.”

두 사람이 만난 지 반년 만인 2021년 9월에 그레이스케일 법인을 설립했다.


“부모는 나이가 들고, 자녀는 철이 들고…”
부천의 한 오피스텔상가 2층에 자리한 매장은 총 140평 규모. 건물바깥 휘장에는 커다랗게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부모는 나이가 듦, 자녀는 철이 듦, 부모님 마음에 쏙 듦, 그레이몰’.

15평의 판매 공간에는 휠체어와 전동 침대부터 성인용 기저귀까지 복지용구들이 전시돼 있고 넓은 창고 한켠에는 물품 촬영을 할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다.

그레이몰 매장을 밖에서 보면 이 같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그레이몰 상품 가격표에는 정가와 할인가 두 가지가 적혀 있다. 예컨대 60만 원짜리 독일제 보행기의 할인가는 9만 원이다.

장기요양보험 복지용구 지원을 활용하면 본인부담 15%로 건강보험공단이 지정한 18개 품목 400여 종을 구매할 수 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을 수 있는데 모르는 사람, 장기요양 등급이 있어도 복지용구 지원이 되는지 모르는 사람, 자신이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용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모르면 눈앞이 깜깜하고 돈도 많이 쓰게 됩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많이 하시게 되지요.”

이 대표는 시니어용품은 자녀들이 사고 부모가 쓰게 되는 특성상 더욱 정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은 어차피 치매나 거동 불편으로 오프라인 매장에 갈 수 없는 상태예요. 자녀들이 대신 사줘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충분히 정보를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초 이커머스 위주의 복지용구몰을 구상했지만 건강보험공단의 지원을 받으려면 지자체로부터 ‘복지용구사업소’ 승인을 받아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오프라인 매장이 필요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등록된 복지용구사업소는 전국에 1977곳(지난해 말 기준). 대도시에 쏠려 있고 대부분 영세하다.


  장기요양보험 이용이력과 회원이력 연동시켜
비록 50대 창업이지만 스타트업으로 인정받아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그레이몰 홈페이지와 건강보험공단 사이트를 연동시키는 시스템을 개발한 덕이다.

공단에서 복지용구를 사려면 1인당 연간 한도 160만 원, 상태에 따라 구매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나뉜다.

보행기는 5년에 2개, 안전손잡이는 1년에 10개 등 품목마다 한도가 제각각이다. 문제는 이런 규정이 너무 복잡해 일반인은 자신이 뭘 살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

그레이몰 홈페이지. 노인복지용구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사진을 볼 수 있다.  

알려면 복지용구 사업소에 가서 공단 시스템에 들어가 자신의 복지용구 구매 이력 5년 치를 확인해야 한다.

이들은 이걸 회사 사이트와 연동시켜 장기요양인증번호와 이름을 넣고 회원 가입을 하면 장기요양보험 사용 이력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회원 가입 뒤 마이페이지로 로그인하면 18개 품목이 다 나오고 ‘구매 가능’ ‘구매 불가능’ ‘언제 샀으니까 언제 다시 살 수 있다’는 안내가 품목마다 나온다. 연간 한도 160만 원 중에 얼마를 썼으니 얼마를 쓸 수 있다는 것도 안내된다.

-규제가 너무 많은 건 아닌가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예요. 편법와 위반이 생겨나면 규제는 거미줄처럼 늘어나지요. 장기요양보험이 실시된 2008년 당초에는 제한이 없었다고 해요.

그랬더니 어떤 사람들이 미끄럼 방지양말을 160만원 어치 사서 길거리에서 팔다가 적발됐어요. 이러면서 규제가 하나둘 만들어졌다는 거죠.


몇만 원 안전손잡이, 수백만원 수술비와 고령자의 고통 막아줘
프로그램이 완성된 12월 이후 회원은 960여 명. 장기요양등급자가 100만여 명인 것에 비하면 극소수다. 지난해 5억 원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안에는 수지균형을 이루는 달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다만 너도나도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으면 가뜩이나 어렵다는 건보 재정에 더 부담을 주지 않을까.

“제도를 적극 홍보를 하지 않는 이유가 그런 거라면 난센스입니다. 장기요양보험 연간 11조 원 중 복지용구는 3000억 원 정도 들어갑니다.

복지용구의 예방 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침대 옆 안전손잡이 설치에 만 원 돈이 들지만 설치하지 않아 낙상사고를 당하면 치료비로 수백만 원이 들지요. 어느 쪽이 경제적일까요.”


고관절 골절 방치하면 2년 내 사망률 70%…예방이 중요 
특히 낙상으로 인한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이 크다. 고관절 골절을 방치하면 2년 이내 사망률이 70%이고, 수술해도 2년 이내 30%가 사망한다.

그레이몰에서는 자체 유튜브 제작을 통해 낙상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낙상, 순간에 대한 영원한 후회’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제작했다.

“고관절은 다치면 온전하게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중요한 부위죠. 뼈와 근육이 정상적이라면 엉덩방아를 찧어도 부러지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면 근육이 줄고 유연성도 부족하고 대부분 골다공증이 와 있어 작은 충격에도 부러지게 됩니다.

골절도 골절이지만 충격, 마취, 수술 등을 겪고 나면 보행등력이 떨어지고 절뚝이는 걸음을 거쳐 지팡이, 워커, 휠체어 순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 활동량이 갈수록 줄고 다른 질환들도 악화되다가 합병증까지 겹치면 사망에 이르는 거죠.”

그래서 이들이 만든 유튜브에서는 “차라리 손목을 포기하시라”는 조언도 나온다. 여차하면 넘어질 때 손으로 짚어 손목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고관절을 지키라는 조언이다.


집이 안전해야 어르신들도 안전하다 
“다들 다치신 다음에 뭘 하려 하잖아요. 사실 그 전에 해야 적은 돈으로 안전을 추구할 수 있는데 누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정작 위험이 현실이 되면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되고.”

-예방효과의 맹점이죠. 예방한 덕에 사고가 막아진 건지 본래 문제가 없었던 건지 분간하기 어려우니까요.

“다치기 전에는 안전손잡이 하시라, 미끄럼 방지 매트 깔고 지팡이 짚고 다니시라고 하면 ‘내가 그걸 왜 하냐’ 이러시니까요. 그게 참 어려운 것같아요.”

일찌감치 초고령사회에 돌입한 일본의 경우 의료정책을 고령자가 돌봄이 필요없는 상태, 즉 스스로 생활하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돌봄 예방’으로 중점을 옮긴 지 오래다.

소비자들에개 상품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정확하게  주기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에 최선을 다한다. 상품촬영을 위한 스튜디오에서. 부천=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시니어상품 정보 서비스의 플랫폼 꿈꾸다
만 2년 전 어느 봄날의 한끼 식사 이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인생 2막을 연 두 사람의 꿈은 크다.

일단은 사업이 수요자들에게 알려지는 게 급선무다.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공단 지정이 아니더라도 추천할 만한 상품들도 함께 취급하는 등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일부 상품은 직접 제작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NH가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연 오픈 비즈니스데이 행사에서 우수 테마상을 받았는데, NH의 전국망을 활용해 지방 노인 단독가구의 집을 안전하게 바꾸는 낙상 방지 비즈니스를 제안하려는 계획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시니어를 위한 상품과 정보 서비스의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어요. 저희는 이 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젊고 유통을 잘 아는 편입니다.

시니어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지금 부모님 때문에 회원이 되신 분들이 앞으로 10여 년 뒤면 본인이 고령자가 됩니다. 일종의 미래세대에 대한 ‘유스(youth) 마케팅’ 개념도 있는 셈이죠.”

 스포츠마케팅 회사 재직 시절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이준호 대표. 본인 제공 

박진호 이사는 30, 40대에 완구 수입 업체를 운영했다. 박진호 이사 제공



서영아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