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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도 멋진 한옥[공간의 재발견/정성갑]

입력 | 2022-10-21 03:00:00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이런 집 한 채만 있으면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그냥 인생 성공.”

너른 마당, 남산타워가 보일 만큼 뻥 뚫린 전망, 바닥부터 천장까지 ‘공예로운’ 집임이 느껴지는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있다 보니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 차는 있어야겠다’ 싶었지만 더한 욕심은 정말이지 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갖고 싶은 것은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충분한 시간. 공간이 있더라도 이를 누리는 시간을 함께 확보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가졌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선보이는 ‘행복작당’은 잡지에 실린 근사한 집 여러 채를 애독자들에게 공개하는 자리다. 마디마디 가꾸고 보살핀 집에 유명 가구나 조명, 화장품 브랜드가 한 곳씩 들어가 집을 전시장처럼 활용하는 개념. 그만큼 볼 것도 많아지고 공간의 풍경도 근사해진다. 한남동 일대와 양옥을 무대로 한 적도 있었지만 내게 최고는 언제나 북촌 한옥마을이 주인공일 때다. 조선 왕조 때부터 대대로 왕족, 양반, 관료 출신이 거주해 기품이 넘치는 공간들. 몇 번의 손바꿈이 일어났을 테지만 멋과 낭만을 아는 이들이 또 그들만의 감각과 스타일로 완성한 공간은 한 치 두 치 구체적인 기능에서 벗어난, 시적이고 사려 깊은 풍류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달콤한 것은 한옥에 흐르는 시간의 결. 하늘 위로 천천히 흐르는 구름,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씩 떨어지는 단풍잎, 저녁이 돼 빨갛게 물드는 석양을 보고 있으면 굳이 목적지를 정해 발걸음을 떼지 않았는데도 마실 나온 듯, 소풍인 듯 마음이 맑아진다. 당장의 쓸모에 연연해 모든 공간에 지붕을 얹은 것이 아니라 마당과 하늘에 큰 지분을 툭 잘라 내어주고 남은 공간을 갖고 살뜰하게 생활의 무대를 디자인하는 여유 혹은 배포. 당대의 실용과 미학, 소재와 기술, 세계관과 자연관이 맞물려 완성된 형태일 텐데 ‘집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숨구멍 아니냐!’ 하는 듯한 통찰이 느껴지는 사상과 배치는 볼수록 놀랍고 감동적이다. 안전함, 쾌적함, 효율성 같은 것은 집이 우리에게 주는 기본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마르지 않는 샘, 평온한 영혼까지 허락하는 곳이라야 비로소 집이 되는 것이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은 “인생은 집을 향한 여행”이라고 했다. 사는 동안 계속 중요한 집. 그런 집이 의당 가져야 할 모습과 가치, 더 큰 이해에서의 실질적 쓸모를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알았던 것 같다. 행복작당을 다녀오고 나서 한옥 전셋집을 구했다. 기대가 된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