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혜원정사 ‘초중고생 백일장’ “제대로 된 심사위원 모시고 싶어” 주지 원허스님 요청받은 성전스님, 불교방송PD 문태준 시인에 부탁 지인 김연수-변왕중 소설가 불러 “아이들 글 읽다 울컥할 때 많아”… “시 자체가 때 묻지 않은 천진불”
10일 부산 연제구 혜원정사에서 만난 문태준 시인, 변왕중 작가, 주지 원허 스님, 김연수 작가(왼쪽부터). 남다른 인연으로 맺어진 세 작가는 이 사찰이 주관하는 백일장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매년 부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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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연제구 혜원정사에서는 10일 소설가 김연수 변왕중, 시인 문태준이 아이들의 손때 묻은 원고와 씨름하고 있었다. “야,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하지”라는 감탄사와 더불어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번지는 걸 보니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일곱 해의 마지막’을 비롯해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로 유명한 김연수 작가는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재주 많은 편집자로 시와 소설로 등단한 변왕중 작가는 부인 박기린, 딸 다인 씨와 함께 활동하는 가족작가. 시집 ‘가재미’ ‘그늘의 발달’ ‘맨발’을 비롯해 최근 에세이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를 출간한 문태준 시인은 서정적인 시와 산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인연의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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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에서 잠시 눈을 뗀 이들은 세월과 사연을 더듬다 웃음을 터뜨렸다.
“문태준이랑 김연수가 한 공간에서 심사하기는 쉽지 않죠.”(변 작가)
“주지 스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리워 이렇게 모이는 거죠.”(문 시인)
“한 사찰에서 30년 가깝게 백일장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에요.”(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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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글 읽다 울컥할 때 많아”
심사 뒤 해운대의 한 식당에서 다시 만난 세 작가는 ‘찐친’이었다. 오랜 세월 알고 지내면 몇 차례 다툴 법도 한데 그런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라고 묻자 김 작가가 문 시인을 향해 “내가 먼저 등단해 삐졌을까?”라고 말했다. 문 시인은 “뭐, 1년 먼저 등단했지만 너는 시가 안돼 소설로 갔잖아. 저기 둘은 시와 소설 모두 등단한 2관왕인데, 나만 금메달이 하나”라며 웃었다.
이들은 “서로 코가 꿰여 시작한 심사이지만 이제는 이 무렵 부산행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제주 불교방송 국장을 맡아 현지에 정착한 문 시인은 제주, 김 작가와 변 작가는 각각 경기 고양시와 강원 강릉시에서 부산으로 향한다. 변 작가는 “젊을 때는 약속하지 않아도 저녁 무렵이면 어느 새 한자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어렵다. 그래서 내년, 내후년 부산행이 벌써 기다려진다”고 했다.
심사도 글에 대한 평가에 앞서 배움이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글로는 잘 다듬어지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읽다 보면 울컥할 때가 많아요.”(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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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