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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정은]尹 집무실이 ‘백악관 베끼기’ 되지 않으려면

입력 | 2022-03-22 03:00:00

백악관 내에서도 ‘불통 대통령’ 비판
美 대통령 공간보다 소통법이 관건




조감도 가리키며 직접 ‘50분 브리핑’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담은 조감도를 공개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50분 가까이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5월 10일 대통령 취임 직후 새 집무실에서 첫 공식 업무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정은 논설위원


워싱턴특파원을 지낸 3년간 백악관 앞을 지나다닌 횟수가 100번은 넘은 것 같다. 대단한 일도 아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을 오가거나 점심을 먹으러 갈 때 지나다닌 길이 그 길이었을 뿐이다. 백악관 바로 옆으로 미국인들은 출퇴근을 하고 조깅과 산책을 하며 무심히 지나다닌다. 가깝고 익숙한 장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용산으로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모델로 든 것이 백악관이다.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이 위치한 웨스트윙이 모델이라고 한다.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도 그가 기자회견에서 직접 언급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과정에 해외 특정 국가의 모델이 이렇게 여러 번 언급되는 일도 드물다. 그만큼 백악관의 접근성과 개방성을 본뜨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리적 거리와 동선이 소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기자들만 해도 백악관 웨스트윙 1층에 위치한 브리핑룸의 위치 덕을 많이 본다. 주변을 서성거리다 보면 고위 당국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즉석 기자간담회가 수시로 열린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은 경내 잔디밭에서 뜨고 내리는 전용 헬기를 자주 이용하고, 전용 리무진이 움직일 때는 10여 대의 비밀경호국(SS) 차량이 따라붙는다. 웨스트윙에서 일하는 직원은 비서실장 등 핵심 참모와 보좌관 50여 명. 나머지 실무 직원들은 백악관 바깥의 업무 청사를 쓴다. 백악관이 한국에 알려진 것처럼 활짝 열린 공간은 아니라는 말이다.

백악관을 차지했던 대통령들이 모두 대국민 소통을 잘한 것도 아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에 ‘불통 대통령’으로 언론의 불만을 샀다. 지난해 말까지 진행한 22회의 언론 인터뷰가 트럼프(92회), 오바마(156회)보다 적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사나흘에 한 번꼴로 대국민 연설을 했던 그였지만, 막상 껄끄러운 질문이 나오는 자리는 회피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점수는 더 나빴다. 직접 정례브리핑에 나서고, 주요 언론사 기자들의 이름을 모두 외워 호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자화자찬과 일방적 메시지 전달, 궤변에 가까운 해명으로 되레 비판을 키웠다.

‘소통 대통령’이라고 불린 오바마 전 대통령의 스킨십은 정작 백악관 밖에서 이뤄진 게 더 많았다. 그는 수시로 의회를 찾아 반대파 의원들을 설득했고 미 전역을 도는 타운홀 미팅을 통해 국민들과 만났다. TV쇼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그런 그조차 초임 시절에는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고 털어놨다. 여론을 붙잡으려는 지도자의 노력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윤 당선인이 ‘용산 시대’의 개막을 공식 발표한 만큼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됐다. 여러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두 달 안에 군 시설의 연쇄 이동을 포함한 엄청난 속도전이 진행될 것이다. 최종적인 결과물이 그가 머릿속에 그렸던 ‘한국의 웨스트윙’처럼 나올지 여부는 알 수 없다. 8년간의 건축을 통해 탄생한 백악관의 아름다운 공간이 밋밋한 국방부 청사에서 구현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 쓴소리도 경청해 반영하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그 초심을 5년 내내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윤 당선인은 백악관이라는 공간에 앞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던 미국 대통령들의 소통법부터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 용산 집무실의 안착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