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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가르치라[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33〉

입력 | 2022-03-09 03:00:00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지혜의 빛을 잃지 않는 고전이 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장자크 루소의 ‘에밀’은 그러한 고전이다. ‘교육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교육에 관한 이야기다. 그중 4권에 나오는 연민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루소는 이렇게 질문한다. 왕은 신하들에 대한 연민이 왜 없을까. 귀족은 농민을 왜 경멸할까.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왜 그토록 모질까. 그의 답은 이렇다. 왕은 보통 사람이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귀족은 농민이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부자는 가난해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루소가 살았던 18세기와 달리 지금은 왕과 귀족이 대부분 없어져 상황이 다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외형은 변했을지 몰라도 신분 계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부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은유적인 의미에서 보면 지금도 왕이 있고 귀족이 있다.

루소는 남의 불행과 고통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지면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며, 불행한 사람들의 운명이 언젠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가르치라고 충고한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자기 밖으로 나와서 고통당하는 사람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 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기치 않은 실존 속으로 자신의 삶이 내던져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타인에 관한 연민의 시작이라는 논리다.

그는 인간이 본래 선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신의 저서를 “창조주의 손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선하다. 모든 것은 인간의 손에서 나빠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래적인 선함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선하다는 믿음을 갖고 타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일깨우자는 거다. 어찌 이것이 젊은이들만의 문제이랴. 연민의 마음을 잃고 약자 위에 군림하려 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루소의 말처럼 왕과 귀족과 부자의 자리는 영원한 게 아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