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의 연대기/이창익 지음/544쪽·2만5000원·테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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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미래가 궁금할 때 점집을 찾는 이들이 있다. 실패의 두려움, 미래의 불확실성을 미신에라도 기대어 해소하려는 시도다. 원하는 답이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일제강점기 신문기사와 경찰·재판 기록을 들춰 당시 대중 사이에 퍼져 있던 미신의 실태를 살펴본다. 절망적인 식민 지배기 사람들이 의지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극단의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 본성이 미신을 만든다고 말한다. 1935년 7월 광주에서는 가뭄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마을 여성들이 무등산 정상에 올라가 단체로 소변을 보는 독특한 ‘기우제’를 지냈다. 대개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산 정상을 방뇨로 더럽히면 오염물을 씻어내기 위한 신성한 힘이 작동해 비가 내릴 거라고 믿은 것.
미신은 절망의 감정과 결합돼 더 강해졌다. 당시 치료법이 없던 나병은 ‘걸리면 끝’이라는 공포감을 안겨줬다. 이에 인육을 먹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미신이 퍼졌다. 실제로 1930년 3월 10일 전남 나주군에서 한 여자가 나병을 앓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왼쪽 허벅지살 450g을 잘라 구워 먹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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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미신들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미신이 조선인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 총독부가 미신 퇴치에 나섰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 믿음을 지우고 탄생한 세계인지 알기 바란다”고 썼다. 전근대 시대의 유물로 간주돼 온 미신을 통해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복원한 저자의 시도가 신선하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