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 작가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 대구서 개인전 ‘수풍교향’ 가로 16m 대형 회화… 역동적인 숲의 움직임 화폭 채워 1946년 아이 업고 거리 나온 여인… ‘어느 가을날’에 그날의 외침 담아 “민중화가 감옥에 날 가두지 말라… 캔버스에 자아 남기는 화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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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에서 소리가 느껴지나요?”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에서 5일 만난 강요배 작가(69)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의 개인전 ‘강요배: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 도처에는 바람이 가득했다. 그림 안에는 바람이 불었고, 그로 인해 파도가, 때론 비가 내렸다. 한바탕 수라장이 지나간 고요한 모습을 담을 때도 있었다.
강요배는 자연을 그린다. 한때 인물그림, 걸개그림, 역사주제화 등을 다뤘지만 1992년 서울에서 고향 제주로 귀향한 뒤에는 대개 풍경과 풍광을 화폭에 담아 왔다. 그가 제주의 그림에 담고자 한 건 자연에 겹겹이 쌓여온 시간성과 역사성이었다. 그렇기에 구체적이고 세밀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에 와닿은 풍경을 추상적으로 풀어내 왔다. 대구 출신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을 기리며 대구시가 제정한 ‘이인성 미술상’의 지난해 수상자인 그는 수상자전인 이번 전시에서도 대자연과 역사를 소재로 한 대형 회화, 영상, 설치 등 40여 점을 내놨다.
강요배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내놓은 대형 신작 ‘수풍교향(水風交響)’(2021년)은 자연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담은 한 폭의 파노라마 회화다. 500호 캔버스 8개가 모여 하나를 이뤘다. 한편에는 고요한 밤하늘과 나무가, 또 한편에는 세차게 내리치는 파도가 그려져 있다. 작가는 빗자루, 신문지, 구긴 책, 손 등을 써서 그림을 그렸는데, 캔버스에 가까이 가면 작가가 얼마나 큰 동작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상상이 간다. 대구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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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한 번에 볼 수 없잖아요. 그걸 공간 속에서 봐야 합니다. 시간 없는 풍경, 자연은 없어요.”
그의 말은 자연이 캔버스 안에 갇히지 않고, 역사의 면면을 담은 채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강요배의 작품 ‘어느 가을날’(2021년·위 사진)은 10·1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1946년 미군정의 행정 실패로 쌀값이 폭등하자 대구에서 굶주린 시민들이 시위에 나선 날이다. 작품 ‘‘장미’의 아침놀’(2021년)에서는 강렬한 붉은색을 통해 자연의 힘을 보여준다. 대구미술관 제공
강요배는 특정 사조에 속하길 거부했다. 그는 “다들 역사화가, 민중화가라며 시대의 감옥 속에 날 가두려 한다. 나는 예술가일 뿐이다. 캔버스에 그리는 건 내 자아를 흔적처럼 남기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약 50년 동안의 화업을 돌이키며 “이제 윤곽선 정도는 알아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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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내년 1월 9일까지. 무료.
대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