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자녀 입시비리 의혹에 공정성 강화한다며 금지어 늘려
서울 A고교의 한 교사는 지난해 대학입시를 앞두고 한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수정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학생이 고교 입학 전부터 자매결연을 한 해외 아동에게 한국 동화책을 번역해 보내준 사례를 학생부에 적으려 했더니 “금지어를 포함해 저장하겠느냐”는 경고성 팝업창이 모니터에 떴다. ‘해외’ ‘자매결연’ 등 표현이 금지어로 지정된 탓이다. 이 교사는 비슷한 표현을 찾아 정리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충남 B고 교사도 “지난해 학생부 금지어는 4만 개 수준으로 국어사전만큼 두꺼웠다”며 “올해는 줄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아 경고 팝업창이 뜨면 심장이 덜컥한다”고 말했다.
23일 국회 교육위원회 정경희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부를 수정한 경우는 총 69만8260건으로 2019년(11만4595건)의 6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는 2019년 교육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 사건을 계기로 발표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학생부에 기재하면 안 되는 ‘금지어’를 대거 늘리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교육부는 학생부에서 학교명을 블라인드(비공개) 처리하게 되면서 수정도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공정성을 해치지 않기 위한 조치이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혼란스럽다는 호소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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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에 쓰지 못하는 내용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학생부가 학생의 성장과 학교생활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해 사실상 평가 자료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대학들이 면접에서 학생부에 기록된 내용을 검증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과도한 제한으로) 학생부가 너무 간단해지면서 학생부종합전형은 교과전형이나 다름없게 됐다”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