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는 갑자기 나의 삶에 밀려들었다. 정부는 전 국민에게 집에 있으라 강권했다. 잠시 거리를 두고 멀어져야 더 가까워질 수 있다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원래 집순이이기 때문에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참 가볍게도.
작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자 사람들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잇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시도한 일은 요리였다. 유튜브에서 가르쳐주는 레시피대로 움직이기도 했고 나름의 창의성을 담아 시도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내 의욕을 꺾은 요인은 너무나 좁은 부엌이었다. 도마를 쓰려면 말리기 위해 엎어놓은 그릇들을 치워야 했고 채소를 다듬으면 개수대 구석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인덕션은 한 구뿐이어서 김치볶음밥을 할 때면 밥을 볶고 치운 뒤 국을 데우고 그것까지 치운 뒤 달걀프라이를 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달걀프라이를 얹을 때면 이미 밥은 식어가는 상태였다.
그 뒤 배달 음식으로 연명하다 나는 흘러나온 옆구리 살과 마주하게 됐다. 코로나 확진자가 아니라 ‘확찐자’가 는다더니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인가. 확찐자의 공포가 성큼 다가와 급하게 홈트레이닝을 검색했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영상이 떴다. 영상에서는 부위별 상태별로 자세한 운동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어색한 몸짓으로 화면 속 선생님을 따라 했다. 30여 년간 운동과 동떨어져 살았던 내 몸은 ‘플랭크’(복근운동의 일종) 30초에도 바들거리며 무너졌다. 그러나 위기의 이순신에게도 12척의 배가 있듯 나에게는 계획만 세우면 이어가는 꾸준함과 성실성이 있었다.
3주간의 운동을 마치고 원하는 허리 사이즈를 완성한 날, 나는 나에게 갓 튀긴 돈가스와 이 시린 맥주를 사주며 자축했다. 그리고 곧 다음 운동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종아리와 허벅지 운동도 추가하고 어깨와 팔 운동도 해야지. 아침마다 공복에 스트레칭도 해보자.’ 계획은 완벽했고 그것을 지키는 나도 꽤 충실했다. 걸림돌은 따로 있었다. 왼쪽 팔을 뻗으면 냉장고에 닿고 오른쪽 팔을 뻗으면 침대에 닿는 내 작고 작은 집, 그게 내 발목을 잡았다.
딱 집만큼 좁아지는 마음
GettyImage
이삿짐을 나르며 아빠는 답답하다고 말했다. 나는 말없이 짐만 여기저기 욱여넣었다. 아빠와 엄마가 돌아가고 난 뒤 나는 그 좁은 집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 답답해서, 한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은 내 방과 내 처지가 서러워서.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나는 곧 내 좁은 공간에 익숙해졌다. 좁아도 조용하고 따뜻하잖아 하면서. 내 나름대로 잘 지낸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살아왔는데 코로나의 파고는 내 일상을 뒤흔들었다.
코로나 방역 단계가 높아지며 카페 이용이 금지됐다. 더는 밖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나는 방에 낮은 테이블을 펴고 노트북을 켰다. 우유를 듬뿍 넣은 카페라테를 만들어 자리에 앉았다. 글을 쓰려고 보니 참고 서적을 두고 온 게 떠올라 몸을 일으키다 방금 만든 커피를 모두 바닥에 쏟고 말았다. 분명 내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었다. 조금만 더 조심하면 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보다 좀 더 넓은 곳이라면 내 부주의가 용인될 공간도 늘어날 것이란 확신이 일었다.
어차피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날로 나는 새집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용산에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선다는 걸 알았다. 역세권에 투룸이라니! 거실과 방 하나. 거실을 침실로 쓰고 방은 작업실로 만들고 싶었다. 넓은 책상을 두고 한쪽 벽을 책장으로 채우는 상상을 했다. 서류를 넣고 당첨자 발표가 날 때까지 빌고 또 빌었다. 올해 운을, 아니 내년 운까지 다 몰아서 당첨에 쓰게 해달라고. 뭐, 반전 없이 나는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었으니까. 나중에 들으니 원룸 형태로 된 좁은 평수는 경쟁률이 그 반의 반도 안 됐다고 한다. 심지어 두 명이 입주하는 셰어형으로 모집한 세대는 미달이었다.
부풀었던 꿈이 쪼그라들어도 쉴 틈은 없었다. 나는 바로 집 알아보기에 착수했다. 조건은 현재 집보다 넓을 것, 하나였다. 부동산 앱으로 수많은 매물을 보다 무리해서 예산을 맞추면 가능한 집을 발견했고 다음 날 보자마자 계약했다. 살던 집보다 넓고 창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는 팔 다리를 뻗을 존엄이 필요하다
포장이사를 하러 온 분들은 작은 집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짐에 놀랐다. 특히 테이블과 싱크대와 침대 밑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책에 고개를 저었다. 구석에서 나온 책 박스를 들어 옮기며 그는 내게 물었다. “혹시 작가세요?” 나는 “죄송해요, 책이 좀 많죠?” 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많은 짐과 더 많은 쓰레기를 이고 지고 이사를 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마음껏 팔을 뻗어 운동하고 지압 슬리퍼를 신고 집 안을 배회하며 멍하니 창밖의 야경을 본다. 그게 내가 월세 15만 원을 더 주고 얻은 여유다. 비좁은 집을 두고 인권이나 존엄이라는 무거운 담론을 꺼내고 싶진 않다. 다만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맘껏 팔다리를 뻗을 수 있는 정도의 여유와 자유는 필요하다. 아무리 집에서 잠만 자더라도.
박사랑 작가
● 1984년 출생
● 2012년 ’어제의 콘스탄체‘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수상
● 2017년 소설집 ’스크류바‘ 2019년 장편소설 ’우주를 담아줘‘ 발표
박사랑 작가
〈이 기사는 신동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