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여름/이정명 지음/376쪽·1만4000원·은행나무
하지만 남자의 행복은 곧 산산조각 난다. 생일 다음 날 아내가 사라진 것. 어디로 갔을까. 누구에게 행방을 물어야 할까. 남자는 아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어쩌면 남자가 그동안 숨겨 왔던 ‘그 사건’ 때문에 아내가 사라진 것일까. 오랫동안 잊고 지내려 했으나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사건을 남자는 기억해낸다. 아내를 찾기 위해 과거의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린다.
저자는 독자를 서서히 비밀스러운 사건의 중심부로 이끌고 간다. 조선 시대 화가 김홍도(1745∼?)와 신윤복(1758∼?)의 일대기를 다룬 대표작 ‘바람의 화원’(은행나무)처럼 속도감 넘치는 문체 덕에 소설은 술술 쉽게 읽힌다. 스릴러라는 장르는 조선 시대 훈민정음 반포 전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저자의 작품 ‘뿌리 깊은 나무’(은행나무)를 연상하게 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faction·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 소설로 유명하지만, 이번 작품은 현재를 배경으로 한다.
날씨는 날씨를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감정까지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주인공은 온화한 바람이 불어올 땐 자만심에 빠지고, 따가운 햇볕 아래선 짜증을 낸다. 한여름 한 남자의 좌절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