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브리지 재해구호협 송필호 회장
희망브리지 응급구호 키트에는 최근 손톱깎이가 추가됐다. 빨랫감 등을 담을 수 있는 파우치도 크기별로 제공한다. 송필호 희망브리지 회장은 “먹고 자는 문제뿐만 아니라 이재민들의 자존감도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반려동물을 위한 구호물품 제공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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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성장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재난의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재난구호 시스템은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14일 서울 마포구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송필호 회장은 “새로운 형태의 재난에 대한 정부의 대비가 미흡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뿐 아니라 기후변화,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희망브리지는 1961년 출범한 국내 최초의 재난재해 구호모금 단체다. 민간 모금을 체계적으로 이끌고, 의연금품 지원이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아일보 등 언론사와 시민단체가 주축이 돼 설립됐다. ‘동일 피해, 동일 지원’을 원칙으로 60년 동안 약 1조5000억 원의 성금을 모아 5000만 점 이상의 구호물품과 의연금을 이재민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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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포항·경주 지진 등 대형 재난을 잇달아 겪으면서 정부의 재난 대응 역량도 높아졌다. 하지만 송 회장은 “‘재난 행정’은 커졌을지 몰라도 현장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현장 대응에도 여력이 없는데 윗선 보고를 먼저 신경 써야 하는 구태는 여전하고, 여러 재난이 겹치는 복합재난에 대한 준비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난의 피해는 발생 당시에만 그치지 않는다. 삶의 터전이나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의 트라우마는 평생 지속된다. 희망브리지가 ‘재난 사후관리’에 주목하는 이유다. 송 회장은 “마을공동체가 다시 회복되고, 이재민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확장된 의미의 재난 구호”라고 강조했다.
송 회장은 특히 기후변화가 초래할 재난을 우려했다. 미국과 호주에선 대형 산불이 매년 반복되고, 올 초 미국 남부 지역에선 이례적인 한파가 덮쳐 도시가 마비됐다. 한반도에선 2018년의 기록적인 폭염이나 지난해 두 달 동안 이어진 장마가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송 회장은 “최근 100년 동안 세계의 지표 온도가 평균 1.4도 올랐는데, 한국은 1.8도나 상승했다”며 “반복되는 폭염과 한파, 장마 등을 단순한 기상이변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점점 강력해지는 자연 재난은 자연이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며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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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무실에는 ‘환난상휼(患難相恤·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다)’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송 회장은 “코로나19를 겪는 선진국이나 10년 전 대지진을 겪은 일본의 사례에서도 정부의 힘만으로는 재난 재해 극복에 한계가 있다”며 “환난상휼의 정신을 가진 시민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