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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유재동]이 차별은 우리 모두의 아픔

입력 | 2021-03-23 03:00:00

편견과 조롱에 시달리는 美아시안들
한국도 ‘혐오 바이러스’의 위험지대




유재동 뉴욕 특파원

우연히 트위터에서 그 동영상을 본 것은 2월 초쯤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마을. 한 청년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산책 중이던 노인을 힘껏 밀쳤다. 80세가 넘은 할아버지의 몸이 잠깐 뜨더니 이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장면을 보자 문득 공포감이 엄습했다. ‘내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누가 뒤에서 공격할 수도 있겠구나.’ 노인은 그 충격으로 이틀 뒤 숨졌다. 그때부터 인적이 드문 길을 걸을 땐 가끔씩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는 습관이 생겼다.

막연한 공포가 현실이 된 건 그 후 며칠 뒤였다. 함박눈이 쌓인 맨해튼 센트럴파크를 혼자 걷는데 뭔가 단단한 것이 다리를 아프게 때렸다. 순간 주위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몇 대를 더 맞은 뒤에야 비로소 상황을 파악했다. 저만치서 청년 네댓 명이 눈 뭉치로 날 공격하면서 정작 내가 볼 때는 태연하게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너도 날 맞혀 보시지. 공짜로 맞아줄게”라는 조롱뿐이었다.

그냥 철없는 놈들의 못된 장난쯤으로 넘겨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할아버지가 봉변을 당하던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아시안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도 매일같이 나올 때였다. ‘나도 당했구나’ 싶다가도,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는 생각도 교차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정말 내가 아시안이라서 그랬는지, 그들을 쫓아가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은근히 부당하다 싶은 일을 겪을 때마다 드는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땅에서 ‘너희는 왜 다 똑같이 생겼느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같은 식의 언어 희롱은 매우 일상적이다. 주변에 안 당해본 사람을 찾기 어렵다. 이젠 괜히 집 밖에 나섰다가 몸을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수준이 됐다. 누구는 지하철에서 난데없이 얼굴을 흉기에 베이고, 또 누구는 길에서 배에 칼을 맞더니, 급기야 총기 난사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까지 생겼다. 바이러스보다 인종 테러가 더 무서워서 외출을 못 할 지경이다.

많은 이들은 혐오 범죄가 증가하는 배경을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수사(修辭)와 선동에서 찾는다. 맞는 말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를 지지하지 않는 흑인의 상당수도 이 공격의 가해자인 사실, 작년에 트럼프에게 투표한 아시안이 4년 전보다 오히려 늘었다는 점은 이런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왜 하필 아시안일까. 미국에서 이들은 조용하고, 열심히 일하며, 불이익을 당해도 불평하지 않는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길에서 아무 이유 없이 맞아도 괜히 저항해서 화를 키우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많은 경우는 너무 익숙해서 그게 차별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런 모습이 이들을 제노포비아의 손쉬운 타깃으로 만든 것일까.

희생양을 찾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나타나는 행동이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힘들다 해도, 타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적의(敵意)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혐오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민자의 나라’라던 미국은 팬데믹이라는 초대형 재난이 터지며 결국 그 밑천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런 ‘혐오 바이러스’의 위험지대가 어디 미국뿐이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곳이라면 이런 바이러스는 어디서든 창궐할 수 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 문제를 미국 내 한국인들의 아픔으로만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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