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4개월 여 남기고 물러나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3.4 © News1
“거악에 침묵하는 검사는 동네 소매치기도 막지 못할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해 7월 대검찰청이 발간한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란 책자의 발간사를 직접 쓰면서 이런 구절을 적었다. 35년 동안 미국 뉴욕주 검사장을 지내면서 ‘화이트 칼라 범죄의 아버지’로 불렸던 고(故) 로버트 모겐소 검사장이 했던 말이다. 윤 전 총장은 “모겐소는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판사, 정치인, 대기업 등 거대 사회경제 권력의 부패에 대해 우직하게 수사를 이어나갔다”며 “모겐소가 한 평생 추구한 검사의 길이 우리나라 검사들에도 용기와 비전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썼다.
대검찰청은 최근 이 책을 발간 1년 만에 일선 검사 2300여 명에게 배포했다. 윤 전 총장이 지난달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실에 “일선에 책자를 배포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7월 책자를 완성한 대검은 예산, 저작권 문제 등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검찰 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법안과 관련해 해외 사례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윤 전 총장이 대검 관련 부서에 “책자도 배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중도 사퇴 직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미국 검찰의 직접 수사 사례를 설명하면서 모겐소 검사장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윤 전 총장은 “로버트 모겐소에 대해선 글을 써도 10장은 쓸 수 있다”며 “그는 미국 갑부들의 시세조종, 내부거래, 탈세를 검찰 수사로 엄단했고, 그 혜택은 미국 국민에게 돌아갔다”고 했다.
1960년대 케네디 행정부 시절 맨해튼 연방검사로 임명된 모겐소는 1974년 지역 시민들의 투표로 맨해튼 지방검사장이 됐다. 그는 이후 아홉 차례 연임에 성공해 35년간 검사장 자리를 지켰다. 미국의 TV드라마 ‘로 앤 오더’ 애덤 쉬프 검사의 실제 모델인 모겐소는 2019년 99세 나이로 별세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