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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준감위 진정성 평가한다”면서도 양형조건엔 참작 안해

입력 | 2021-01-19 03:00:00

[이재용 파기환송심]李, 국정농단 사건 징역 2년6개월
“준감위, 계열사 준법감시 감당 무리”… 재판부, 실효성 부족하다고 판단
이재용측 “前대통령 직권남용에 기업 재산권 침해당한 게 사건 본질”
李, 실형 선고순간 한동안 침묵… 마지막 진술서도 “할 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피고인의 진정성과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삼성 준법감시제도는 실효성의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워 양형 조건으로 참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18일 오후 2시 25분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가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한동안 정면을 응시한 채 침묵한 이 부회장은 재판부가 법정구속되기 전 마지막 진술 기회를 줬지만 “할 말이 없다”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 17일 구속 수감된 뒤 2018년 2월 5일 항소심의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되기 전까지 353일간 수감됐던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다.


○ “준법감시제도 실효성 부족” 양형 반영 안 해


파기환송심의 핵심 쟁점은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대한 양형 고려 요소에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를 포함하느냐였다. 정 부장판사는 2019년 10월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그룹 내부에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고 있었다면 이 사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미국 연방양형기준의 준법감시제도를 제안했다.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성을 갖출 경우 감형 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2월 외부 독립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출범했다. 같은 해 5월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의 권고로 무노조 경영을 폐지하고,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하기 위해 강일원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3명의 전문심리위원을 지정했고 이들이 삼성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 등을 평가했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미국 준법감시제도에 비해 삼성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제도는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이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위험을 예방하고 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최고경영진이 회사 내 조직을 이용해 위법행위를 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어려워졌다”면서도 “옛 삼성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이 위법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대응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의 준법감시위가 삼성 계열사 대부분에 대한 실효적 준법감시를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다”고도 했다. 다만 재판부는 “지금은 삼성준법감시제도에 비록 미흡한 점이 있으나 시간이 흐른 뒤엔 준법윤리경영의 출발점으로서 대한민국 기업 역사의 큰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게 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 이 부회장 측 “재판부 판단 유감”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선고 직후 “이 사건의 본질은 전 대통령의 직권 남용으로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이 침해당한 것”이라며 “재판부의 판단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 측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삼성 준법감시위가 법으로 정해진 기구가 아니라 권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삼성이 국내 처음 도입해 시도한 제도라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특검 측은 “주요 피고인에 대해 실형이 선고된 것은 대법원 판결 취지를 감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부회장 측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의 소유권과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에 출연한 후원금 등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항소심보다 뇌물 액수가 약 50억 원이 늘면서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의 양형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삼성 자금을 횡령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원을 요구했기 때문이고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거절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양형기준보다는 낮은 형량으로 실형을 선고했다.

박상준 speakup@donga.com·신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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