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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삶과 세상을 바꾸는 축복”[현장에서/김태성]

입력 | 2021-01-15 03:00:00


서울남부지법 인근에 정인이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화환이 세워져 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김태성 사회부 기자

“엄마, 친구들이 입양 부모들은 다 나쁘대. 입양된 애들은 불쌍하대.”

어깨가 축 처진 딸아이의 눈빛이 몹시도 흔들렸다. 조용히 아이를 안아준 심모 씨(51)는 울컥 목이 멨다. 가슴으로 낳은 딸. 심 씨는 2007년 공개 입양한 딸을 누구보다 사랑으로 키웠다고 자부한다. 딸도 어디서든 입양아라고 당당히 얘기해왔다. 하지만 최근 아이는 부쩍 움츠러들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차갑게 식어버린 주위의 시선 때문이다.

“딸이 앞으로는 친구나 주변에 뭐라고 말해야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말문이 막혔어요. 나도 정인이 사건에 누구보다 슬프고 분노했지만 그게 입양을 색안경 끼고 보게 만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13일 아동학대로 세상을 떠난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최근 정인이의 해맑던 얼굴이 공개되며 사회적 공분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하지만 요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양부모가 정인이를 학대한 사실이 부각되며 입양 자체를 문제시하는 사회적 편견이 일고 있다.

설마 싶겠지만 입양 가족들은 최근 이를 크게 체감하고 있다고 한다. 자녀를 입양한 정모 씨(60)는 “입양 가족이란 이유로 이렇게 위축되는 기분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다.

“갑자기 지인들한테 전화가 자주 와요. 그런데 뜬금없이 ‘아이는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뉘앙스만 들어봐도 알잖아요. 갑자기 무슨 죄라도 지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전국입양가족연대는 7일 “사회적 냉대를 멈춰 달라”는 호소문도 발표했다. 오창화 연대 대표는 “주위 시선이나 다른 가족들의 반대로 ‘입양을 보류하고 싶다’는 예비 입양 부모들이 늘고 있다”며 “입양이 필요한 아이들은 계속 늘고 있는데 이렇게 편견이 확산되면 심각한 입양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분노와 별개로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3만45건 가운데 양부모가 학대를 저지른 경우는 94건이었다. 전체 학대 가운데 0.3% 정도다. 3만여 건 가운데 72.3%는 ‘친부모’가 저질렀다.

오히려 정인이 사건에 대해 더 아파했던 건 입양 부모들이었다. 아이 셋을 입양한 신모 씨(59)는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입양 부모들은 정인이가 ‘내게 올 수도 있었던 아이’로 여겨진다. 더 분하고 더 속상하다”고 했다.

물론 입양 과정에서 예비부모들을 꼼꼼하게 검증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입양 절차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자’가 아동학대를 막을 해법으로 논의되는 건 입양에 대한 편견만 키울 뿐 실효성이 없다. 입양은 “한 아이는 물론이고 한 가족의 삶과 영혼을 살리는 숭고한 일”(오창화 대표)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김태성 사회부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