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권력자 홍보신문 기자가 개과천선하더니 그 결말은?

1922년 12월 19일

플래시백

1922년 11월 20일 새벽 경성 필운동 백대진의 집에 형사 2명이 들이닥칩니다. 백대진을 종로경찰서로 붙잡아 간 뒤 다시 장재흡을 체포합니다. 백대진은 1921년 7월 창간된 월간잡지 신천지의 주간이고 장재흡은 같은 잡지 영업부장이었죠. 종로경찰서는 두 사람을 연행한 이유를 공개하지 않고 취조를 계속했습니다. 두 사람을 잡아간 뒤 17일째인 12월 7일에야 백대진은 재판에 넘기고 장재흡은 기소유예로 풀어주었죠. ‘조선독립사상을 고취하여 정치의 변혁을 선전하고 국헌을 문란하게 했다’는 혐의였습니다.

일제 총독통치가 시작된 뒤 첫 잡지 필화인 만큼 백대진은 저항정신이 투철한 언론인이었을 듯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죠. 인천공립보통학교 교사를 하다 1919년 매일신보에 입사했습니다. 1919년은 온 민족이 떨쳐 일어난 3·1운동의 해였지만 매일신보 지면에서는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죠. 3월 7일자에야 ‘각지 소요사건’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매일신보 기자들을 비난하고 물리적 위협까지 했습니다. 양식 있는 기자들은 갈등이 심해 줄줄이 퇴사했죠. 편집부장이던 이상협이 그만두고 다음해 창간된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새 출발한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백대진은 이런 사정으로 빈자리가 생긴 권력기관 홍보매체 매일신보에 사회부장으로 입사했던 것이죠. 이 때만해도 그에게 민족이니 독립이니 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 운명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1920년 미국 상하원 의원단의 조선 방문이었습니다. 중국에서 곧바로 일본으로 가려는 의원단을 조선에 들르도록 교섭해 우리의 독립의지를 보여주려고 했죠. 동아일보는 김동성과 장덕준을 특파해 이들을 설득했습니다(동아플래시100 2020년 4월 21일자 참조). 총독부 기관지인 일어판 경성일보와 한글판 매일신보도 기자를 보냈죠. 기관지의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만합니다. 이때 파견된 매일신보 기자가 백대진이었죠. 의원단의 특별열차에 동아일보 기자는 가로막히고 기관지 기자만 탔습니다. 동아일보는 ‘배일에 반대 선전…매일신보 기자 백대진 씨 활동’ 제목으로 폭로 기사를 실었습니다. 1920년 8월 25일자였죠.

①의 위는 1920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기사 제목. 매일신보 기자 백대진이 배일에 반대하는 선전 활동을 했다고 폭로했다. 아래는 동아일보 기자는 미국 의원단의 특별열차를 타지 못하게 차단당했다는 기사의 제목. ②는 백대진이 1920년 8월 27일자 매일신보에 미 의원단과 면담한 과정과 내용을 소개한 기사 제목. ③은 백대진이 8월 28일자 매일신보에 자신을 오해하지 말고 감정에서 벗어나라고 호소한 기사의 제목.

백대진의 이름이 기사화되자 비난의 눈총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매일신보 8월 27일자에 ‘당신이 정말 조선사람인가?’라고 따져 묻는 미 의원에게 조선의 실정을 솔직하게 전했노라고 소개했죠. 그래도 성난 민심이 가라앉지 않자 다음날에는 ‘금수강산 반도의 형제자매여, 나 역시 반도의 비와 이슬을 받고 태어나 자란 조선인인데 어떻게 양심을 속이고 조상을 잊겠느냐’는 제목으로 또 기사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우리는 성인이 될 때까지 참아야 하겠도다. 이것이 곧 우리가 꽃다운 장래와 힘 있는 미래를 얻는 방법이 되겠다’는 의견을 의원단에 전달했다고 나오죠. 한 번 떠난 민심이 돌아올 리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사표를 던지고 신천지 주간으로 다시 태어나 총독통치를 맹렬하게 공격했죠. 그가 신천지 창간호에 쓴 ‘신천지임을 선언하노라’는 검열로 모두 삭제당했습니다. 급기야 그가 11월호에 쓴 ‘일본 위정자에게 고함’이 보복의 빌미가 됐죠. 참정권이나 내정독립은 조선인의 성에 차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매일신보 기자 때 미 의원단에 전한 의견과 정반대의 주장이었죠. 1922년 12월 19일자 동아일보가 전한 재판기사에서 그가 ‘이전에 일본인에게 많은 모욕을 받고 분하던 중에’ 글을 썼다고 한 말은 매일신보 시절 겪었던 마음고생을 고백한 것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그는 총독부를 표나게 편들었다가 뚜렷하게 맞서기도 해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죠. 6개월 복역 후 해방을 맞을 때까지 기자로는 불우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新天地(신천지) 筆禍事件(필화사건)

십팔일 백대진 씨의 공판
일인의 모욕이 글 쓴 동긔

총독정치 이래 쳐음되는 잡지(維誌) 필화(筆禍)사건에 대하야 신텬디(新天地) 사건은 작 십팔일 오후 두시 반 경부터 경성디방법원에서 화촌(花村) 판사와 대원(大原) 검사가 렬석하고 개뎡 하얏는대 방텽석에는 륙칠십 명의 방텽자가 갓득 찻고 각 신문 잡지 긔자도 다수히 드러왓다. 백대진 씨는 검은 두루막이에 발 째진 버선을 신고 줄두하야 화촌 판사가 뭇는 대로 이러서 매동(梅洞)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인천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가 잇다가 잡지 신문 긔자를 다니다가 현재는 조선협회(朝鮮協會) 이사(理事)로 오상은(吳相殷) 씨가 자본을 내이어 경영하는 신텬디 주간으로 잇는 말을 하고

사실심리에 드러가 신텬디 십일호에 『일본 위정자에게 고함』이란 뎨목 아래에 조선사람도 이제는 깨이엇다. 참정권이나 내정독립 갓튼 것으로 조선인의 인심을 진정할 수는 업스니 그 실례로는 참정권운동자 민원식(閔元植)이가 량근환(梁槿煥)의 칼날에 죽고 황천(荒川) 대의사를 끄러온 내정독립파의 분란을 보라. 사실은 진리이라. 조선인은 이 진리에 의지하야 참정권 이상의 무엇을 요구한다 함은 독립을 의미한 것이냐 무르매 피고의 대답이 자긔는 동방시론(東方時論)이란 잡지에 쓰힌 『세계문뎨로 본 조선』이란 론문과 세정조(細井肇)가 경영하는 자유토구사(自由討究社)의 조선의 각종 평론이라는 글을 보고 자긔도 써보고 십흔 생각이 나서 쓴 것이라 하고 답변하얏다.

판사는 다시 그러면 피고는 그런 사상이 업스면서 남이 쓰닛가 쓴 것인가 한즉 피고는 그런 것은 아니라 이전에 내 자신이 일본인에게 만흔 모욕을 밧고 분하든 중에 그러한 긔회에 의견을 발표한 것이라고 하엿다. 그 다음은 판사가 그러면 피고가 발표한 『조선인이 참정권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독립이냐 무르매 피고는 그것이 독립이라고까지 드러가서 말한 것이 아니라 다만 조선인이 자유가 되어야 하겟다는 뜻이라는 답변으로 사실심리를 맛치고 계속 공판은 오는 이십이일로 뎡하얏는대 자진하야 무보수로 변호하는 변호사는 (崔鎭(최진) 장도(張壽) 리한길(李漢吉) 김병로(金炳魯) 리승우(李升雨) 강세형(姜世馨) 박승빈(朴勝彬) 제씨이더라.

현대문

신천지 필화사건

18일 백대진 씨의 공판
일본인의 모욕이 기사 쓴 동기

총독정치 이래 최초의 잡지 필화사건인 신천지 사건은 지난 18일 오후 2시반부터 경성지방법원에서 하나무라 판사와 오하라 검사가 자리에 앉으면서 개정하였다. 방청석에는 60~70명의 방청자가 가득 찼고 각 신문 잡지 기사도 많이 들어왔다. 백대진 씨는 검은 두루마기에 발가락이 갈라진 버선을 신고 출두하여 하나무라 판사가 묻는 대로 일어나서 매동 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인천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가 있다가 잡지 신문 기자들 지낸 뒤 지금은 조선협회 이사로 오상은 씨가 자본을 출자해 경영하는 신천지 주간으로 있다고 진술하였다.

사실심리에 들어가 신천지 11호에 『일본 위정자에게 고함』이라는 제목 아래에 「조선사람도 이제는 깨었다. 참정권이나 내정독립 같은 것으로 조선인의 인심을 진정할 수는 없다. 그 실례로는 참정권운동자 민원식이 양근환의 칼날에 죽고 아라카와 의원을 데려온 내정독립파의 분란을 보라. 사실은 진리이다. 조선인은 이 진리에 의지하여 참정권 이상의 무엇을 요구한다」는 것은 독립을 의미한 것이냐 묻자 피고는 「나는 동방시론이라는 잡지에 실린 『세계문제로 본 조선』이란 논문과 호소이 하지메가 경영하는 자유토구사가 펴낸 조선의 각종 평론이라는 글을 보고 나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쓴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판사는 다시 「그러면 피고는 그런 사상이 없으면서 남이 쓰니까 쓴 것인가」 물으니 피고는 「그런 것은 아니라 이전에 내 자신이 일본인에게 많은 모욕을 맡고 분하던 중에 그러한 기회에 의견을 발표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은 판사가 「그러면 피고가 발표한 『조선인이 참정권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독립이냐」 묻자 피고는 「그것이 독립이라고까지 들어가서 말한 것이 아니라 다만 조선인이 자유가 되어야 하겠다는 뜻」이라는 답변으로 사실심리를 마치고 다음 공판은 오는 22일로 정하였다. 자진하여 무보수로 변론하는 변호사는 최진 장도 이한길 김병로 이승우 강세형 박승빈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