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69세’ 임선애 감독 인터뷰
영화 ‘69세’ 메가폰을 잡은 임선애 감독은 각본도 직접 썼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데뷔작부터 노인 대상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택한 임선애 감독(42)을 24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버 더 레인보우’(2002년)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한 임 감독은 ‘도가니’ ‘화차’ ‘수상한 그녀’ ‘사바하’ 등 작품 수십 편의 스토리보드를 맡았다. 2016년부터 노인 성범죄 사례와 논문을 분석하고 경찰 등 수사기관을 취재해 3년여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2013년 노인 성폭력 사례를 인용한 칼럼을 읽었다. 노인 여성을 무성적(無性的) 존재로 보는 사회적 편견을 악용해 성범죄 타깃으로 삼는 현실이 충격적이었다. 노인 여성 성범죄는 국내외 영화에서 거의 다뤄진 적이 없더라. 창작자로서 남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갈망과 함께 누군가 운을 떼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했다.”
간병인으로 일하는 효정(예수정)은 나이와 직업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매 순간 단정하게 옷을 갖춰 입는다. 엣나인필름 제공
“효정이 싸워야 하는 대상은 노년층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시선이다. 성폭력 피해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고통과 그늘이 있다. 연대를 통해 스스로의 존엄과 가치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동인은 받침대로 쓰던 자신의 시집을 정성스레 닦고 시를 읽는 효정을 만났기에 다음 시집을 낼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성폭행을 당한 후, 유일한 취미인 수영을 하다 팔다리 곧게 뻗은 채 가라앉던 효정은 결국 높은 곳으로 올라선다. ‘심효정, 69세. 병원 조무사 이중호에게 성폭행 당했습니다’라고 적힌 A4용지 수백 장을 양팔에 안고 피해를 당한 병원 옥상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죽은 듯 물 밑으로 침잠했던 효정은 병원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 끝내 난간에 선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향해 고백한다. 누구나 존엄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자각하고 이야기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