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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큰 바위 얼굴[횡설수설/송평인]

입력 | 2020-08-11 03:00:00


미국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큰 바위 얼굴’을 조각해 놓은 러시모어산이다. 중서부 사우스다코타주에 있다. 러시모어산은 이 조각이 없었으면 자동차를 타고 가다 무심코 지나쳤을 도로가의 볼품없는 바위산이다.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산에 조각해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는 아이디어는 주의 한 역사학자가 냈다. 자연 속에 조각한다는 아이디어는 참신한 듯하지만 실은 조지아주 스톤산의 조각에서 베껴 왔다.

▷자연 조각의 아이디어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선정된 4명의 미국 대통령이다. 조각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좌에서 우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세 사람이 차례로, 약간 떨어져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새겨졌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미국의 탄생, 루이지애나를 매입한 제퍼슨은 미국의 확대, 루스벨트는 유럽을 제친 미국의 발전을 상징한다. 링컨이 루스벨트보다 시기적으로 앞섬에도 그를 맨 오른쪽에 두고 거리를 벌린 것은 남북전쟁을 극복해 미국의 지속을 가능케 한 점을 미국의 성장과는 별도로 중요하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러시모어산에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을 추가로 새기는 절차에 대해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실에 문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9일 보도했다. 백악관은 NYT 보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2018년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트럼프와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 러시모어산 조각에 대해 이야기한 일이 있으며 당시 자신은 농담인 줄 알고 웃었지만 트럼프는 웃지 않고 진지했다고 한다.

▷트럼프만이 아니라 모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모어산에 자기 얼굴이 영원히 새겨지는 꿈을 꿀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임기 중에 아니 임기 후에라도 외부에 표현하고 추진하는 일은 겸연쩍어서라도 하지 못할 일이다. 2018년 북한 김정은과의 회담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도 자신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했다며 노벨 평화상 수상을 추진했던 사람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새니얼 호손은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소설 속의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산의 얼굴 형상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듣게 된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기대를 가지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채 오랜 세월이 흘러 평범한 농부였던 어니스트는 사랑을 설파하는 설교자가 된다. 어느 날 그의 설교를 듣던 한 시인이 어니스트를 보고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트럼프가 꼭 읽어봐야 할 소설인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