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암살의 두려움을 안고 사는 독재자들은 독약이나 세균, 바이러스 등에 피해망상에 가까울 정도의 노이로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자연적인 감염에 대한 공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유행하자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사망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4일이나 잠적했다가 최근 나타났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봄 20일간 잠적했을 때도 코로나19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일 공장 준공식에 나타나 잠적을 끝낸 이후에도 원산과 평양 외곽 강동군에 머물렀는데 평양의 코로나19 상황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사람이 감염될 리도 없을 텐데 이런 과민반응은 사망한 ‘최고 존엄’에도 적용된다.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 들어가려면 외투와 소지품을 모두 맡긴 뒤 신발 바닥 소독기와 멸균대를 지나야 한다. ‘초강력 흡입여과실’도 있는데 볼살이 일그러질 정도의 강풍이 일면서 진공청소기처럼 온몸의 먼지를 빨아들인다.
▷독재자들의 감염 노이로제는 자업자득이다. 오랜 독재로 나라가 어렵다 보니 의료체계가 부실한 데다 국민의 건강 수준도 낮아 감염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니카라과 정부는 코로나19에 아예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방역당국이 암매장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5만여 명, 사망자는 7000여 명이지만 과소 추계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청정국을 자처하지만 믿는 사람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눈치 볼 필요가 없는 독재자들이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