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20년째 진행 김창완
이 방에만 들어오면 김창완은 바보처럼 늘 싱글벙글이다. 무려 20년째다. 단 한 번도 펑크 낸 적 없다. 휴가를 쓴 적도. 15년간 동고동락한 박현주 작가는 김창완 DJ의 장점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라디오를 너무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저 따뜻한 웃음소리.”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0년이라니 제 인생의 3분의 1이네요. 오리배에서 노를 젓듯 하루하루 정신없이 해왔어요. 그 세월의 무게가 새삼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서울 양천구 S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3일 만난 김 씨는 “20년 전, 오프닝 시그널을 처음 들은 순간만은 생생하다”고 했다. “아침 9시의 기분에 꼭 맞는 상큼한 휘파람 소리가 데자뷔나 현몽(現夢)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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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갓 나온 빵, 바로 싼 김밥이 더 맛있잖아요. 라디오는 현장성이 강한 매체죠. 마치 음악처럼요. 그날 아침의 그 순간을 포착해 담고 싶어요.”
로커, 배우, DJ…. 일인다역의 삶은 때로 슈퍼맨 같다.
“간밤에 악당 짓을 하다 아침에 착한 역을 하는 저를 낯설어하는 청취자들도 있었어요. 그래도 ‘저 사람, 웃는데 진짜 나쁜 놈 같아 보여’ 하는 평을 들으면 연기자로서는 흐뭇하죠.”
매주 수요일 라이브 초대석 ‘꽃다방 김마담’도 인기 코너다. 프랑스의 전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부터 혁오까지 국내외 다양한 게스트가 다녀갔다. 음악가에겐 공포의 코너로 유명하다. 성대가 잠긴 오전에 음악 거장의 코앞에서 라이브하는 부담감이 어마어마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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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DJ란 그저 ‘그 시간에 거기 있는 사람’이에요. 청취자들도 ‘내가 이 순간, 여기에 있구나’ 하고 잠시라도 느낀다면, 제 몫은 다한 거라고 봅니다.”
▼스튜디오 속, 오프에어 김창완 ‘명언들’▼
(노래나 광고가 나가는 동안 김창완은 뭘 할까. 통기타를 치거나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눈다. 게스트 중에는 기자도 있다. 요즘의 고민이나 노래에 관한 뒷이야기도 가끔 들려준다. 직접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은 것들)
1. “요즘 제가 제일 골몰하는 문제는, ‘산은 왜 초록색일까’예요. ‘하늘은 왜 파란색일까’도….”
2. “(1986년 산울림 11집 수록곡)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는 사실 해가 쨍쨍하던 날 만들었어요. 30도가 넘는 한여름 폭염 속 차 안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쓴 곡이죠. 공상의 산물인 셈이에요.”
3. “‘너의 의미’에 나오는 간이역(‘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은 (강원 원주시) 간현역이에요. 집사람과 싸운 뒤 당시 서너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간 기차역이죠.”
▼김창완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든 곡들▼
2014년 4월에 쓴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 청취자들 중 아이를 키우는 분이 많다. 애청자들을 위해 ‘아침창’ 홈페이지에 가장 먼저 공개했다. 무료로 듣고 내려받을 수 있도록. 김창완 밴드 3집 ‘용서’(2015년)에도 실었다.
○ E메이져를 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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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창’의 둘째 곡이 나가는 동안 스튜디오에서 홀로 통기타를 드르륵 치고는 영감이 떠올랐다. ‘E메이져를 치면’이라는 제목부터 펜으로 써뒀다. ‘E메이져를 치면 늘/그녀가 입던 초록색 점퍼가 생각이 난다’로 시작해 ‘F#마이너를 치면…’ ‘A D Bm G’의 코드 진행을 홀린 듯 연주해 나가며 그대로 노랫말을 붙였다. 1부가 채 끝나기 전에 작곡을 마쳤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