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대처에서 보여준 정부의 일처리… ‘시키면 한다, 다만 옛날 방식으로’ 여전
고기정 경제부장
정부는 왜 마스크 대란을 자초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외부로 드러난 정부 의사결정 과정만 보면 ‘위에서 시키면 그냥 하고 본다, 항상 하던 방식으로…’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정부는 대통령이 마스크 관련 대응을 주문하자 기재부 차관을 팀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국세청, 관세청에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동원해 단속부터 벌였다. 마스크는 지난해까지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구성항목에 포함조차 안 돼 있던 제품이다. 주무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도 아닌, 거시·금융 전문가인 기재부 차관이 수매단가 900원짜리 마스크의 제조와 유통구조를 알 리 만무하다. 제대로 된 TF였다면 전국 120여 개 마스크 제조업체가 하루에 몇 장을 생산할 수 있는지, 전염병 전개 상황에 따른 마스크 수요 변화가 어떤 추이를 보일 것인가부터 대통령에게 알렸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마스크 생산이 충분하다고만 보고했으니, 이를 들은 대통령은 마스크 부족으로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음에도 마스크 공급량에는 문제가 없으니 배분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관료들의 문제로만 볼 건 아니다. 정권 초기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커피 내리는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젊고 탈권위적이며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뒤늦게야 마스크 대란의 실상을 알고 역정을 냈을 정도로 이 정부의 의사소통 역시 과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료들은 여전히 인사권자의 명령이 떨어지면 ‘하면 된다’ 식으로 밀어붙이고, 위에는 듣기 좋은 소리만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영화 ‘올드보이’ 등을 만든 박찬욱 감독의 가훈은 ‘아니면 말고’란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툴툴 털어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박 감독의 말이다. 세상은 좁아지고 기술은 통제되지 않으며 리스크는 예측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앱과 마스크앱이 민간에서 먼저 나왔듯, 정부의 대응은 갈수록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공식 의사결정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정부 내에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분출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고 민간 역량을 빌려오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아야 한다. ‘하면 된다’는 그 이후에 필요하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