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150일 동안 출장을 다니면서도 “가난한 회원국들의 분담금으로 호강할 수 없다”며 비행기 일반석만 고집하고, WHO 예산을 아끼려고 제네바의 소형임대주택에 살며 관용차도 마다한 이 총장은 61세 때인 2006년 뇌출혈로 쓰러져 5년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일본인으로 한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봉사를 하다 이 총장을 만나 수녀가 되려던 뜻을 접고 결혼한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는 남편의 뜻을 이어받아 페루 빈민가에서 여성의 자립을 돕는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WHO 사무총장은 지구촌 77억 명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자리다. ‘세계의 보건대통령’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아온 것도 이런 막중한 책임 때문일 것이다. 이 총장의 후임이자 직전 사무총장인 홍콩 출신의 마거릿 챈은 10년간 재직하며 신종인플루엔자, 지카바이러스 등과 싸워 이겨냈다.
▷WHO는 1948년 설립 이후 질병 퇴치에 큰 기여를 해왔다. 한 해 250만 명이 사망할 정도로 수천 년간 인류를 괴롭힌 천연두를 1980년 완전 퇴치한 것도 WHO의 공로였다.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WHO의 신뢰도가 흔들리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어 걱정스럽다. ‘병은 정치가 아닌 과학으로.’ 지금 WHO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