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속 조상들의 취미생활 살펴보니
실학자 서유구가 남긴 ‘임원경제지’ 가운데 ‘이운지’에는 가족과 시골에서 삶을 즐기는 방법이 담겨 있다. 이를 번역, 출간한 임원경제연구소는 “조선의 생활문명이 담긴 이운지에서 오늘날 일상의 변화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사진은 평상 아래 자리를 깔고 한적함을 즐기는 모습이 담긴 조선시대 그림(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풍석문화재단 제공
임원경제지는 농학의 대가인 실학자 서유구(1764∼1845)가 홍문관 부제학에서 물러난 뒤 손수 농사를 짓고 은거하면서 18년 동안 편찬, 집필한 책이다. 113권 54책으로 250만 자가 넘는다. 이 책을 번역 중인 임원경제연구소가 총 16개 부분(志·지) 가운데 다섯 번째로 선비들의 취미생활을 소재로 한 ‘이운지’를 최근 번역 출간(풍석문화재단)했다. 총 4권. ‘이운(怡雲)’은 “산중에서 구름을 즐기는 일은 혼자만 할 수 있다”는 중국 남조 대 인물인 도홍경(456∼536)의 시에서 따 왔다. “맑은 마음으로 고상함을 기르고 한가로이 소요하며 유유자적하는” 서유구의 이상이 담긴 이운지에서 조선 선비들이 꿈꾼 ‘웰빙’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책은 선비가 은거할 곳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은거할 집은 “크거나 넓게 짓지 않는다”, “무궁화를 심어 울타리를 만들고, 띠를 엮어 정자를 만든다”는 시작 부분은 오늘날의 통념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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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잔잔하고 볕이 좋을 때마다 차를 담은 병이나 술동이를 가지고 정자에 이르러 난간에 기대고 낚싯대를 드리우며…새벽에는 오리가, 저녁에는 기러기가 물 위에 넘쳐나고….”
정원에 모여 한때를 즐기는 명사들의 모습을 담은 단원 김홍도의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인물을 담은 부분. 풍석문화재단 제공
반대로 ‘소확행’의 방법도 알려준다. 선비가 ‘꽃을 가꾸고, 대나무를 심는 일’을 즐길 형편이 안 되면 어떻게 할까. 이운지는 “혹시 사는 곳이 낮고 좁거나 거처를 자주 옮겨야 한다면 ‘담병(膽甁·목이 길고 배가 불룩한 병)’에 꽃을 꽂아두었다가 수시로 바꿔준다”고 했다. 그러면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더구나 “이 즐거움은 가진 자들이 탐하지 않고, 얻으려는 자들이 다투지 않음에도 잠시라도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은거지에 연못을 팔 처지가 아니라면 항아리로 ‘분지(盆池·항아리를 이용한 못)’를 만들 수 있다. “큰 항아리를 줄 세워서 땅에 묻고 항아리 사이사이 틈에 갈대와 부들을 심으면” 진짜 연못처럼 보인다고 한다. “물을 항아리에 가득 채운 다음 수면에는 개구리밥 잎을 던져 띄우고, 연 따위를 심으며 그 속에는 물고기를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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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임원의 즐길 거리인 차(茶)와 향(香), 금(琴)뿐 아니라 서재와 도서 관리, 골동품과 예술품 감상법 등을 꼼꼼히 소개한다.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장은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가정용품이나 음식을 만들고 직물을 염색하는 임원경제지 속 선비의 모습은 기존 통념과는 전혀 다르다”며 “이운지에서는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즐기려 했던 여가의 경지와 품격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