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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송병기 업무수첩에 ‘산재母병원→좌초되면 좋음’

입력 | 2019-12-18 03:00:00

송철호 후보측 활동 상세히 적혀… 며칠뒤 ‘宋 BH 방문결과’ 기록
송철호 “靑 선거개입 의혹은 소설”




‘2017년 10월 10일 단체장 후보 출마 시, 공공병원 (공약). 산재모(母)병원→좌초되면 좋음.’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비리 의혹을 청와대에 처음 제보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2017년 10월 10일자 업무수첩엔 이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좌초’라는 글자 부분엔 동그라미 표시가 그려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산재모병원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불합격한 것은 지방선거 투표일을 16일 앞둔 지난해 5월 28일인데, 송 부시장이 약 7개월 전부터 산재모병원의 좌초를 언급한 것이다.

송철호 현 울산시장은 지역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대통령 직속의 지역균형발전위 고문으로 2017년 11월 위촉됐다. 송 시장은 2017년 8월부터 울산시장 출마를 준비했으며, 같은 해 가을 지방선거 당선을 위한 캠프 전 모임인 ‘공업탑 기획위원회’를 구성했다. 송 부시장은 이 모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1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6, 7일 송 부시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이 업무수첩을 수사의 핵심 증거로 보고 있다. 업무수첩엔 산재모병원과 관련된 송 시장 측의 계획과 활동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수첩엔 송 부시장이 송 시장과 함께 2017년 10월 12일 서울로 출장을 가 청와대 관계자와 산재모병원과 관련된 논의를 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장 이튿날 메모에는 ‘송 장관 BH 방문 결과’라며 공공병원을 조기에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 작성되어 있다고 한다. ‘송 장관’은 송 시장을 그의 선거캠프에서 부르던 호칭이라고 한다. ‘BH’는 청와대를 뜻하는 단어로 이 외에도 업무수첩에 BH가 수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송 부시장은 송 시장이 출마 선언을 하기 8일 전인 지난해 1월 23일 공공병원과 관련한 예산을 확보했으니 송 시장이 당선되면 공약을 실현하겠다는 취지의 메모를 작성했다고 한다. 같은 해 3월 말엔 청와대 비서관과 한 회의라며 (공공병원의) 총사업비가 2000억 원이며, 기획재정부의 반대가 예상돼 대응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는 구체적 행동지침까지 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시장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산재모병원은 결국 지난해 5월 말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서 탈락해 좌초됐다. 반면 송 시장 측은 공공병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업무수첩 내용이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경찰에 하명 수사를 지시한 것과는 별도로 송 시장 측과 공약을 사전 조율한 정황이어서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에 따르면 송 부시장이 청와대에 최초 제보한 내용 중 ‘비리 혐의가 약한 부분’은 삭제하고, 청와대가 자체 입수한 의혹을 추가해 경찰에 이첩했다는 것이다. 또 비리 죄명과 법정형 등도 추가됐다. 이에 대해 송 시장은 16일 “선거 개입 의혹은 상상할 수 없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김동혁·이지훈 기자